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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인말러 Jan 03. 2021

거짓과 위선이 무능보다 낫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난 브런치북, "심심한 위로의 책들을 전합니다"를 쓰며 나는 '정답'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이며, '말'보다 '경청'이 얼마나 중요하고 바람직한지에 대해 적었다. 특히 "산다는 건 모순이고 안다는 건 거짓말이야"와 "한 사람의 언품"은 그런 내용들의 집합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 나는 그렇게 쓴 것에 대해 우려가 생겼다.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칼과 방패는 배타적인 것이어서, "정답은 상대적인 것이니 경청해라"라는 메시지와 "자신만의 정답과 가치관을 뚜렷이 하라"라는 메시지가 모순적인 것으로 생각할까 봐서였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칼을 칼집에 넣어두라는 것이었지, 칼을 갖고 있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메시지를 「맹자」공손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손추가 묻길,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장점이 있습니까? 맹자 왈, 나는 천하 사람의 말에 대하여 그 속뜻을 잘 알고 있으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 맹자 공손추장구


맹자는 천하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며, 그 속뜻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말의 속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고, 만일 그 말속에 폭력이 숨어있으면 그 폭력조차도 잘 포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내면에서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말은, 검자루를 쥐고 있되 그 검을 날카롭게 유지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절대 무딘 칼을 지내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잘 경청하는 사람, 남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격언은 오직 선(善)만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능력이 있되 그 능력을 남용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가 훨씬 정확하고 좋은 메시지라고 믿는다.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되, 해를 끼치지 않고 그 능력으로 선을 실행하라.


미디어를 통해 젊은 남성층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 토론토 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일맥상통하지만 훨씬 강렬하고 냉철한 발언이었다.


Someone who is incapable of cruelty is a higher moral being than someone who is capable of cruelty, and I would say, and this follows Jung as well, that that is incorrect. It is dangerously incorrect because if you are not capable of cruelty, than you are absolutely a victim of who is.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보다 도덕적 상위 개체라는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이는 카를 융(Carl Gustav Jung)도 마찬가지로 말했는데, 틀렸다. 그것은 위험할 정도로 틀렸다. 만일 당신이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희생양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죄와 벌」의 밑바탕 같은 책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하나의 문제를 해소했다면, 그때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를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다룬다. 비록 내가 철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에 대해서는 나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 숫하다고 알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같은 판화의 각각 스케치와 채색을 맡은 사람들이다. 니체가 철학을 제공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었다. 둘의 책 모두에서 내가 배운 것은, 마냥 착한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지만 그 힘을 통제해 남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인 '지하 인간'은 그 힘을 완전히 상실한 인간을 그린다. 그는 관청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로, 지금으로 치면 말단 공무원인 셈이다. 그는 괜히 남에게 괴팍하게 굴기를 좋아하며, 주변 사람들을 계속해서 짜증 나게 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런 성격의 지하인간의 "수기"이다. 그가 자신에 대해 묘사한 다음 내용을 읽으면 대충 그가 어떤 성격인지 그려지리라


나는, 예컨대, 자존심이 끔찍이도 강하다. 나는 꼽추나 난쟁이처럼 의심이 많고 곧잘 모욕감을 느끼는 성격이지만, 사실 따귀라도 얻어맞을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얼씨구나 기뻐할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 


오, 만약 내가 오직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면. 맙소사,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존경했을까. 비록 게으름일망정 뭐라도 나의 내부에 지닐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나 자신을 존경했을 것이다. 비록 하나라도 나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성질이 나의 내부에 있다면 말이다. 질문: 대체 넌 뭐 하는 놈이냐? 대답: 게으름뱅이. 과연 자신에 대해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굉장히 유쾌하지 않겠는가. 확실한 정의가 내려졌다는 소리고, 또 나에 대해 말할 게 있다는 소리니까.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 17쪽, 33쪽




지하인간은, 그 자신의 표현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는 세상에 가식과 폭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자기계발이나 자기 관리에도 영 관심이 없다. 그런 그가 하루는 온갖 가식꾼들인 고등학교 동창들의 파티에 참가하게 된다. 동창들은 꽤나 출세한 사람들이다. 그들 중 가장 출세한 사람은 즈베르코프였는데, 장교 출신의 그는 학창시절부터 가식이 몸에 베인 사람이었다. 주인공인 지하인간은 취해서 가식에 대한 온갖 지적과 날카로운 말들로 동창들을 짜증나게 했으니, 그는 사실상 파티에서 쫓겨난다.


모임에서 나온 뒤 그는 실수로 한 사창가에 들어선다. 온갖 가식덩어리인 친구들보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매춘부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의 삶에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지적'의 욕구를 참지 못한다. 정작 자신의 삶이 가장 엉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좀 해 봐, 대체 뭘 위해 넌 이런 데서 네 인생을 망쳐 버린 거야? 커피를 마시게 해주고 배불리 먹여 주기 때문에? 아니, 대관절 뭘 위해 저들은 너를 먹여 살려 주는 거야? 다른 여자라면, 멀쩡한 여자라면 저들이 뭘 위해 그러는지 아니까 그런 빵 조각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을 거야. 너는 이곳에 빚이 있고 그 빚은 뭐 항상, 또 끝까지, 손님들이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그때까지 가겠지. 금방 그렇게 될 테니까,젊음에 희망을 걸지도 마. 사실 그건, 그 모든 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거든.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 156쪽




그러나 매춘부는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사창가에서 하루 하루 삶을 연명하다가 언젠가는 몰락할 것을 그녀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하 인간'이 자신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믿었던 매춘부는, 며칠 뒤 그의 집을 찾아간다.


이 책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하인간은 그녀가 찾아오기도 전에 그녀에게 자신의 주소를 알려준 것을 후회하며 불안해한다. 그녀가 집에 오면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가 보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가 그녀에게 쏘아붙인 질책이 마치 한 바퀴 돌아 자신에게 그대로 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안다. 거짓과 위선에 대한 분노로 그는 오히려 삶을 개선할 노력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그녀를 쫓아낸다. 차라리 즈베르코프 같은 사람이었으면 위선적이었어도, 그녀를 도울 수는 있었으리라. 그러나 지하인간에게 그럴 능력은 없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벌레들 중에서 가장 추잡하고 가장 우스꽝스럽고 가장 변변찮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질투심이 강한 놈이니까. 저놈의 벌레들은 나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주제에 무엇 때문인지 결코 당황하는 법이 없지만, 난 평생 동안 온갖 서캐만도 못한 놈한테 창피를 당할거야, 이런 기질을 타고 났으니까! (···) 무슨 용건이 더 있어? 이런 상황인데 왜 아직도 내 앞에서 얼쩡대며 나를 괴롭히는 거야, 냉큼 떠나지 않고?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 188-189쪽




요컨대 무능보다 거짓과 위선이 낫다.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과 니체의 철학에 스며있는, 냉철한 지혜다. 거짓과 위선은 경우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지만, 무능은 아무런 긍정적 영향도 못 끼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지하인간"의 실패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Cover Photo by Serkan Tur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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