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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인말러 Jan 30. 2021

잘 들어주는 사람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자가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해?" 에너지 넘치는 여성분은 "잘 웃겨줘야지"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냥 옆에서 잘 들어줘"하는 분들도 있다. 언제나 정답을 맞추기란 참 어렵다. 심리학자들은 대개 여성의 삶과 심리가 남성보다 복잡하며, 여성 우울증 환자가 남성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도 그런 이유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우울함이나 고민은 비단 여성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단순히 연인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마음만 앞서 누군가의 고민에 먼저 조언을 하는 것은 참 몹쓸 버릇이다. 그런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것 또한 그 사람만의 노력과 대처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성 있는 대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이란 5분을 통해 그 사람의 신발을 신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화자가 50분 동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면, 그 50분도 기꺼이 그 신발을 신은 채 함께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의 상황에 나 자신을 대입해보고, 그 사람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최선을 다해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과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은 무엇이 없을지 진심으로 생각해보며,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그 사람에게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진정성 있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개 학습된 배려, 나쁘게 말하면 겉치레로 위로하고 듣는 체한다. 그런데 '잘 듣는다는 것'은, 함께 고민하고 아파한다는 뜻 아닐까? 한번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분은 교수님이셨다. 학생이 그에게 상담을 청했을 때 그분은 그 학생과 함께 우셨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진실성을 그때 느꼈다. 타인의 슬픔에 같이 슬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충분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타인의 힘든 것들도 내가 힘든 것들, 혹은 힘들어 본 것들과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


    어떤 책들이 잘 팔리는지 궁금해 서점을 가면, 화술이나 인간 관계 책들이 종종 베스트셀러 서가에 꽂혀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때로 이런 책들은 '듣는 행위', 다시 말해 경청을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사고, 협상에서 이기고, 마케팅에 성공하려면'과 같은 말들이 덧붙는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도 삶이 행복하지는 않은 이유는 아닐까. 겉으로는 예의를 갖춘 대화더라도 말에 알맹이가 없는 이유는 아닐까. 때로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말은 정말 그 사람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진심으로 경청해달라는 애원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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