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인터넷에 올리면서, 내 글에 걱정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어떤 글들은 내가 원하는 주제로, 내가 원하는 만큼 썼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읽지 않을 거라고 바라며 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좁은 통로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메시지와 나의 가치관을 전하고 싶다며 들이민 머리에는, 늘 그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는, 나의 미성숙과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꼬리가 따라붙었다.
글을 쓰며 언젠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과거를 생각하며 종종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실 그마저 충분치 못하다고 느낄 때가 다반사였다. '이불킥'이라는 흔한 말대로,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움을 피해, 과거에 대한 생각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글을 쓸수록 나는 이런 글을 내가 써도 되는지, 사실 지난 과거들을 돌이키면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 다반사인데 내가 글을 쓸 자격이 되는지 많이 걱정했다. 종종 내 글에서 '성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그런 글을 쓸 만큼 어른스럽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지난 시간 동안 잃은 기회도, 잃은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그런 글을 쓰겠는가. 어떤 일들은 내가 꽤씸하게 군 적도 있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도 냈고, 주변인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적도 차고 넘쳤다. 무엇보다 나는, 자존심만 강한 깡통이었다. 좋은 글들을 쓰려는 노력은 어쩌면 좋은 반성문을 쓰려는 노력이었으리라.
나는 좋은 글을 쓰려는 것이 내가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 같아서, 남들에게 성인군자인 체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겁났다. 아니 정확히는, 내 눈에 내 글들이 그렇게 보여서 겁났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위치에 있지 않았다. 내가 나를 이겨내야 하는 문제였다.
내 모습들을 고친 계기는 몇 권의 책들과 강연이었다. '세바시'나 TED 같이 성공한 사람들이 나오는 그런 강연 말이다. 잘못된 것들을 고쳐주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말해주었다. 가장 첫 번째 배운 사실은 "현실에 안주한 채 자존감만 키우려는 것은 아무 소용 없다"였다. 나의 고장 난 부분들은 고치지 않고, 하염없이 나를 사랑만 하겠다는 것은, 그 사랑이 곧 실패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다음 메시지는 "자존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 말고 아무도 챙겨줄 수 없는 내 인생을 나는 얼마큼 신경 쓰느냐의 문제만 있다"였다. 이때 나는 한 번도 처방받은 적 없는 약을 처방받은 기분이었다. 자존감이 없다니, 없다고 믿으니 그 말이 맞았다. 하염 없이 나의 좋은 점들만 보기보다, 나의 나쁜 점들을 고쳐보려 했다. 나에게는 분명 문제들이 있었다. 그 문제들은 고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동안 회피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문제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고민을 하니 그제야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구나, 최소한 신경을 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나는 부끄러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갑자기 옛 친구가 와서 나의 부끄러운 일들을 들춰낸다면 나는 그걸 웃으며 맞장구칠 수 있을까? 진심으로 그것에 대해 "그래 그때 그랬지. 얼마나 멍청했나 몰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몇 번은 자기 전에 상상도 해보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그냥 또 내 머릿속에 웃긴 생각이 들어왔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정말 멋지겠구나 생각하고 잠에 든다.
오늘도 나는, 좋은 글을 써보려, 내가 원하는 하루를 살아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