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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인말러 Jul 25. 2021

글을 쓰지 않는 이유

나는 상황 탓 반, 내 탓 반을 하고 싶다. 요 며칠 나는 브런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상황 탓부터 하자면 사실 나는 올해 3월말에 입대했다. 지금은 모 부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하고 있는데, 7월 초까지는 사무실에서 업무 배우느라 계속 바쁘게 지냈다...지금은 차차 안정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하는 업무도 잘 맞고, 일과중에는 바빠도 나름 해놓은 업무가 뿌듯할 때도 많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문제다. 집에 있을 때 나는 가만히 무언갈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던 나였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매일 밤 거닐던 집 앞은 그날 무슨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소가 되곤 했다. 찬란하지만 아련한 순간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들으면 거리는 그만큼 쓸쓸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였다.


사실 군대에 있는 사람은  생각이 없다. 그저 밖에 나가서 다시 사회를 즐기고 싶을 ...그래서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어드는 일도, 며칠을 고민한 주제로 글을 쓰는 일도 이제 거의 없다. '전역'이라는  글자밖에 머리 속에 없다... 그저 가끔 SNS 들여다보다가, 옛날 생각이  공연히 아련해질 때가 잦을 뿐이다. 그러던  브런치 앱에서 갑자기 나를 재촉하는 듯한 메세지가 떴다. "슬슬   쓰지?" 하는  같았다. 생각해보니 노트에 끄적인 시도 많았는데, 브런치에 시를 업로드한 지도  됐었다.


글을 사랑하지 않냐고? 아니, 여전히 너무 사랑한다. 글을 쓰던 매순간이 그립다. 글을 읽는 매순간이 즐거웠고, 이곳 서가에서 꺼내 읽는 책도 모두 소중하다. 그런데, 밖에 있을 때만큼 깊이 사유하지 않는 내가, '글'을 쓰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안 쓰는 내 모습도 안타까웠지만, 글을 써도 깊이가 없을까봐 두려웠다. 니체의 구절을 읽으면서 해독하던 모습.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서 이 구절은 무슨 뜻일까 고민했고, 헤르만 헤세를 읽으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때로 내 글은 내가 읽기에도 너무 난해했다. 충분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쓴 글들이었다.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경제학 책보다 철학이나 문학을 좋아했다.  군대에 있으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까먹는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내가 뭘 공부했고, 내 꿈은 뭔지.


경제학 전공이라고 선임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그럼 비트코인 잘 알겠네"였다. 그런데 나는 비트코인도 주식도 전혀 모른다. 나는 경제학 중에서도 개발경제학과 노동경제학에 관심이 많고, 금융은 나의 아킬레스건이며,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투자의 귀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꿈은 저개발국가에서도 아이들이 읽을 책이 많게끔 만드는 것이다. 말라리아의 위협도 없고, 내전도 없는 세상에서 단 한권이라도 좋으니까 아이들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다. 군대에 몇 달 있으면서 '전역'만 바라보니 어느 순간 나도 내 꿈을 잊었던 것이다. 며칠 전 바깥에 있는 친구와 전화하면서 그때야 생각이 났다. 내 꿈은 뭐고, 내 취미는 뭐였는지. 그리고 브런치에 실린 내 글을 읽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놀랐다. 내 생각이었지만 내 생각 같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어림도 없이 내가 쓴 글이다.


집에 택배로 내가 좋아하던 책들과 논문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쓴 것이, 앞으로도 글을 꾸준히 쓰겠다는 약속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밖에서 유지하던 생활을, 여기서 그대로 이어나가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 그나마 나는 잊지 않겠다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글을 썼다. 내가 잊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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