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대전, 대전에서 서울, 그리고 서울에서 몬트리올까지
오늘은 공교롭게도 몬트리올에 도착한 지 딱 1년 하고도 하루가 되는 날이다.
2019년 7월 3일 밤 11시 41분 비행기 착륙 후, 28인치 트렁크 3개를 들고 내려서 공항에서 미리 구해놓은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그리고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 후 잠을 자려고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밖으로 나가 새벽 1시에는 맥도날드 밖에 연 곳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햄버거를 먹고 포만감 넘치게 자려고 했으나 결국 아침 8시 기상. 이상하게 이 날 밤 기억만큼은 생생하리만큼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애틀랜타 가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다 챙겨 먹고도 정말로 이상하리만큼 배가 고팠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서 이제 2년 정도 산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고 설레서였을까.
아무튼, 2017년 2주간 캐나다 단풍 여행 중 가장 좋았고 기억에 남는 도시로 나는 2년 간 다시 살게 되었다. 그때 여기 다시 꼭 오게 해 달라고 성당에서 기도를 했었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진 셈이다.
사실 몬트리올로 오게 된 계기는 상당히 단순하다.
맥길(McGill) MBA 과정에 1순위로 지원했고, 가장 먼저 합격 통보를 받았고 가장 많은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1순위로 생각했던 학교에 1순위로 합격을 했는데, 2~3순위가 장학금을 어마어마하게 더 주지 않는 이상 크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3순위였던 York 지원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원서 작성을 중단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회사와 육아로 복귀함과 동시에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앞서 밝혔듯이, 2년 전 가을에 몬트리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고, 지원하는 해 9월에 공교롭게 미국 장기 출장이 잡혀 주말에 잠깐 몬트리올에 가서 캠퍼스 구경을 하고 입학 담당자도 다시 만났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도시 자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고, 오히려 몬트리올로 가게 되어서 정말 설레었다.
그래서 왜 몬트리올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유보다는, 몬트리올이란 도시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몬트리올은 캐나다 동부에 있는 캐나다 제2의 도시로, 불어가 공용어인 퀘벡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참고로 퀘벡 주의 주도는 퀘벡 시티로, 우리가 잘 아는 도깨비의 성이 있는 그곳이다.)
캐나다에서 모든 주를 제외하고 퀘벡 주만 불어가 공용어이고, 캐나다 전체 인구 약 3,800만 명 중 퀘벡에 850만 명이 거주한다. 그리고 몬트리올 광역권에 퀘벡 인구의 절반 가까운 410만 명가량 거주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구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디트로이트, 시애틀 정도 크기의 사이즈로 생각보다 큰(!) 도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바로 오는 직항 편이 없다는 사실... 몬트리올로 오려면 밴쿠버 혹은 토론토를 경유하거나, 미국 주요 도시들을 경유해야 한다. (베이징과 도쿄에서도 몬트리올 직항 편이 있긴 한데 Daily 편성은 아님)
가장 가까운 주요 도시는 오타와(차로 2시간)이고, 퀘벡 시티(3시간)는 오히려 조금 더 멀다. 토론토까지는 보통 기차로 많이 가며, 5시간 반 정도 걸린다. (비행기로는 1시간 10분)
몬트리올 날씨는 다른 캐나다 지역에 비해 혹독한 편이다. 토론토보다 더 춥고, 눈도 많이 올뿐만 아니라 11월부터 4월까지 약 6개월간 우리나라 11월 중순~3월 중순 날씨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올해 5월 초에도 눈이 왔다...) 그리고 5월 말부터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해서 8월 말까지는 거의 우리나라 여름 수준으로 덥다. 물론 습도는 조금 덜하고 태풍 영향이 없어 비가 적게 오긴 하지만.
그래서 오죽하면 몬트리올 사람들은 겨울에 지하도로 많이들 다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도시가 만들어져 있다. 심지어 맥길 캠퍼스도 건물끼리 지하로 연결되는 건물들이 있어서 겨울에는 밖에 나갈 일이 크게 없긴 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난 점이라면 몬트리올이 바로 '섬'이라는 점이다. 몬트리올은 강 위에 떠 있는 섬으로, 섬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캐나다를 개척하면서 섬 위에 마을을 세운 것이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도 답답하면 서울에서 한강 가듯이 세인트 로렌스 강을 가곤 한다.
맥길 캠퍼스는 다운타운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것이 사실 가장 큰 장점이다. 시내 한복판 노른자 땅에 학교가 있고, 바로 옆에는 몬트리올에서 유명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막상 잘 모르는 콩코디아(Concordia) 대학교가 있다. (실제로 링크드인에서 몬트리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출신 학교를 보면 맥길보다 콩코디아가 더 많다. 안타깝지만 맥길 학생들은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건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대부분 학생들은 맥길 근처 맥길 게토(McGill Ghetto)라고 불리는 학교 주변 동네에 살거나, 콩코디아 인근에 살고 있다. 주로 학부생들은 맥길 게토에 살고, 대학원생들은 조금 더 깨끗한 집들이 많은 콩코디아 근처나 다운타운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몬트리올 남쪽 NDG(Notre-Dame-de-Grâce) 지역에 많이들 사는데, 이 쪽도 처음에 고려를 했으나 막상 맥길 캠퍼스까지 거리가 30분 정도 걸려서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운타운에도 한국 마트가 두 곳이 있어서 굳이 그 동네에 갈 이유가 없기도 했고.
(몬트리올 지역 정보가 조금 더 궁금하다면 이 분 블로그 (링크)를 추천한다. 38년 몬트리올에서 사신 한인 블로그이신데 예전에 진작 발견했으면 좋을 뻔했다.)
몬트리올은 사실 북미에서 학생들이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손꼽히는 도시이다. 비교적 안전한 치안, 저렴한 생활비, 수많은 놀거리(음주, 액티비티, 마리화나 등), 술도 18세부터 마실 수 있고... 그래서 몬트리올로 일부러 유학을 오는 미국 학생들도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도시에 대학교들이 많아서 그런지 학생 인구 자체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COVID 이후 도시에 혐오 범죄가 늘어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올해 2월 말, 대로변에서 한국에서 온 연구원 한 분이 소위 묻지마 칼부림을 당해 중환자실로 이송된 일이 있었고 집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도 무장 강도를 당하는 등 위험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그전까지는 사실 MBA 동기들이랑 놀다 학교에서 공부하다 새벽 2시경에 집까지 걸어서 귀가한 적도 많았는데, 이 도시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크게 없었다. (가끔 이상한 홈리스들이나 마약에 찌든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그러나 막상 한국인 대상 혐오 범죄가 발생한 뒤로는 밤늦게 나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게 되었다. 아무튼 내가 사는 지역이 갑자기 우범 지역이 된 걸 수도 있지만... 치안이 한국만큼은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음 편에는 퀘벡의 산업과 퀘벡에서 사는 장단점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