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쓸 수 없는 글

정희진, 또 하나의 문화 동인

by 또 하나의 문화

‘알지만’ 쓸 수 없는 글


정희진,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25년 전, 나는 아내에 대한 폭력(‘가정폭력’)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나는 피해 여성들을 희생자화(化) 시키거나 폭력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다. 그래서 인터뷰(상담) 사례 중 가장 ‘경미한 폭력’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선정성. 나는 이 단어에 히스테리가 있었다. 긴장감과 ‘사명감’ 때문에 음식도 못 먹고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독자를 의식했다. 결국 세 가지 버전으로 썼다가 두 개를 버렸다.


마치 프리모 레비처럼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쓰는) 자아 사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지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앞으로는 고통스러운 소재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세상사는 없었다.


내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고르고 고른 경미한 사례만으로도 나를 의심하고 현실을 수용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논문 심사 때 심사 위원 중 한 분이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만 쓴 거 아니냐. (여성 잡지)‘주부 생활’에서나 본 듯한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다른 심사 위원들이 나 대신 반박을 해 주셔서 심사는 무사히(?) 끝났다.


글은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자, 아는 것(경험)에 대한 해석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다. 아는 것과 쓰기는 별개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가정(假定)했던 문제의식과 필드 웍의 결과가 다를 때, 특히 조사한 내용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쓸 수 없는 이야기일 때, ‘사실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써야 하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는 주재(主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기존에 읽었던 관련 자료와 내가 직간접으로 겪은 ‘위안부’ 운동의 역사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나는 2024년에 출간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에 이은 두 번째 책에 실을 글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가장 불편한 관계에 있으며, 정대협 중심의 ‘위안부’ 운동에 가장 비판적인 세력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갈등은 이미 언론사의 정치 성향에 관계 없이 신문 지상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고, ‘위안부 운동판에서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나는 이 문제가 과거사에 대한 정치적 입장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여성을위한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 수령 여부였다. 유족회 중 군 ‘위안부’ 피해 여성은 받았고, 정대협은 가해국으로부터 이 기금을 받으면 전시 성폭력이 매춘 논리로 변질되기 때문에 국민기금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당시 나도 정대협과 같은 입장이었다). 정대협은 ‘시민단체’, 유족회는 ‘당사자 단체’이기 때문에 운동의 방향과 지향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내 가정이 ‘진실’과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랜 세월 ‘위안부’ 문제에 헌신해 온 연구자, 운동가,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의 증언 내용은 하나 같이 두 단체 간의 입장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들은 군 ‘위안부’ 운동이 근본적으로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대리인(연구자와 운동가를 포괄하는 advocacy그룹) 위주로 진행되었다는 데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았다. 즉 이들의 갈등은 이념적인 차원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국가에 있었다. 해방 후 태평양 전쟁 피해자들을 ‘앞세운’ 수많은 단체와 모임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한국 정부를 대신하여 對일본 보상, 배상 운동을 벌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유족회는 1973년 공식 출범했고, 정대협은 한참 뒤인 1990년 정식 발족한 것이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글쓴이의 처음 가정과 필드 웍의 결과가 다를 때 글쓴이는 무엇에 대해 써야 하는가이다. 내가 인터뷰한 내용과 사례들이 ‘진짜’ 현실이었지만 그들 간의 갈등이나 운동 ‘내부의 풍경’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인터뷰했던 내용은 전부 버려야 했고 글의 주제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인터뷰가 무용했던 것은 아니다. 인터뷰 덕분에 나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글의 방향과 주제를 바꿀 수 있었다.


글쓰기는 ‘폭로(暴/露)’도 ‘고발(告發)’도 아니다. 글쓰기는 현실 그대로를 묘사, 보고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과의 협상의 결과로 글쓴이 스스로가 ‘변형되는(warped)’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들은 것을 그대로 쓰고(알리고) 싶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글의 내용과 수위는 사회와 독자의 수용력, 판단력, 글쓴이의 윤리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 따라서 글쓴이에게 필요한 능력은 자료를 문제의식에 맞게 조직하고 해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과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끝없는 되새김(reflexive)과 탐구이다. (202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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