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의 후기
제주시 조천읍 <뮤지엄 선흘>에서 진행 중인 '할머니의 예술창고 2023: 나 사는 집' 전시회 소식입니다.
12월 9일에 시작한 전시회는 1월 21일까지 연장전시를 진행중이에요. (체육관 전시는 14일까지만 진행한다고 하니 참고하여 주세요.) 열 두 분 할머니들의 집(창고 스튜디오)들과 선흘체육관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예술마을이자 뮤지엄인 선흘에 방문해보세요.
아래는 12월 15일 비가 내렸던 선흘마을을 다니며 전시회를 관람했던 소영 동인의 후기입니다.
맨 하단에는 바로 이 뮤지엄 선흘 - 할머니의 예술창고에서 그림선생을 하시는 최소연 선생님의 책과 인터뷰 링크를 붙여두었어요.
제주 선흘마을 그의 집을 다녀와서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조한의 초대로 제주 선흘 삼춘들의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올 해도 저를 삼춘의 그림 앞에 머물게 하는 것은 모퉁이에 꾹꾹 눌러담아 쓴 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였습니다.
올 해 공부를 시작한 학교 인문상담 수업에서 교수님이 공자의 시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랑'이라고 한 표현은 공자의 시에 대한 애정을 과하게 비유한 저의 표현입니다.^^) 공자는 시를 쓴다, 읽는다 하지 않고, 심지어 가르친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시는 "함께 이야기 나누는 대상"이고, "배워야 하는" 것이며, "더불어 시를 말한 만하다"고 합니다. 시적 언어로 평등하게 참여하는 경험, 일상에서도 시적 언어가 대화에 구현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시적 언어가 감흥을 불러 일으키듯, 서로의 언어로 말미암아 불러 일으켜진 것을 주고 받는 대화, 제자들과도 정답을 말하는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시적 언어로 주고받으며 제자 스스로 삶의 의미와 주요한 가치를 탐색할 수 있게 이끌었다고 합니다. 삼춘들의 그림과 그의 '시'는 그렇게 질문을 던져주는 가르침의 시간이었습니다.
까만 밤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나에게 닿습니다. 그가 지키는 집은 이제 내겐 '돌아갈 집'이 없다는 어떤 부재를 실감케 합니다. 돌아올 자리를 위해 빈방을 지키고 이제는 충분히 남아도는 베개를 보는 그의 눈길이, 내가 미처 보지 못했고 외면했던 무엇을 일깨웁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수천번 깬다"는 그의 긴 밤 한 가운데 초대되어, 늦은 밤 불 꺼진 소파에 앉아 기다린 어머니에게 "왜 불도 안 켜고... 자지 않고"라며 퉁명스럽던 딸의 마음은 이제야 쿵 내려 앉습니다. (홍태옥 삼춘의 베개이야기를 보고.)
삼춘집 마당에 늘 있던 벅구가 올 해 드디어 그림에 등장한 것이 반가우면서도 "밤에 벅구 눈이 빗난다. 벅구는 나만 본다"(강희선 삼춘) 그의 글이 내 맘에 외로움을 두들기는 건 뭘까 싶으면서, "내년을 어떡할까" 싶지만, 또 "오늘까지 잘 살았다"는 삼춘말이 또 내말이라, 오늘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감사히 살아봅니다.
그의 집에 다녀와 남의 집에서,
소영. 2023. 12. 15.
★ 전시회 참고자료
할망들의 '그림선생' 최소연 님의 인터뷰 보기(EBS 뉴스: 그림으로 해방, 열 두 할머니들의 그림수업 2023. 12. 20)
최소연의 책 "할머니의 그림 수업", 2023, 김영사
★ 선흘주민 레이지마마의 인스타그램 릴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