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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나는 여전히 행복주택에 산다

서울생활 8년 차, 비자발적 서울 탈출기 1

by 내일 여기에서

지방 중소도시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10대, 서울에 상경하여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버틴 20대, 농경지가 대부분인 소도시의 행복주택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 30대.


나는 20대 후반에 공무원으로 첫 직장을 얻었다. 어중간한 대학과 어중간한 스펙으로는 부모님 도움 없이 몸하나 제대로 뉘일 곳 없는 서울이었다.

응봉산 팔각정에서 본 빼곡하게 늘어선 아파트들과 줄지어 서있는 차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주변에 별거 없는 서울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해마다 월세와 하숙비가 올랐고 대학 기숙사비는 월세와 맞먹는 데다가 학점에 추첨까지 어지간히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의 지원으로 하숙, 대학기숙사, 지방공공기숙사, 룸셰어, 자취, 고향친구랑 같이 살기 등 대학생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주거 형태를 경험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층간소음에 예민하다는 것과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노래 부르는 사람, 밤낮 시도 때도 없이 발에 망치를 달고 다니는 사람, 분리수거 개념을 내다 버린 사람, 돼지우리에 사는 사람... 그때 깨달았다. 이 정도 예민함으로 서울에 살 거면 경치 좋은 아파트 탑층에 살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당연히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대학 졸업반이 되고, 원래 집이 서울이었던 친구들과 지방이었던 친구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서울친구들은 본가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어떻게 해서든 서울에 직장을 얻으려 했고, 지방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이때 나는 내 미래를 직감했던 것 같다.


'아, 나도 졸업하고 나면 서울에 살 수 없겠구나...'


다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서울에서 괜찮은 직장과 괜찮은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걸 본능으로 알았던 게 아니었을까.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계약기간 1년 남은 자취방에서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취준생들이 들으면 이해 못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공무원 열풍'이 불었다. 인서울 중간정도의 대학만 돼도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그 치열한 구렁텅이에 나는 나를 한번 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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