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 8년 차, 비자발적 서울 탈출기 3
사실 나는 사춘기를 맞이할 즈음부터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거였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때와 비슷한 답답함을 나는 이십 대 중후반에 또다시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원만했으나, 어딘가 가슴이 텅 빈듯한 공허함이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강한 부모님, 안정적인 직업, 안정적인 주거환경 등 일종의 행복의 조건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다 충족된 상태에서 나는 또 탈출을 원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은 이런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향은 공무원의 월급으로도 대기업 브랜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을 정도로 집값이 괜찮다. 또한 대기업과 공기업 등 일자리도 풍부한 편이며 지방 중소도시 치고는 같은 생활권역으로 묶인 지역들의 인프라가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나의 스무 살까지 인생을 돌아봤을 때, 항상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던 터라 이곳에서 언젠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동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반면교사 삼아 나보다 더 나은 학창 시절을 지낼 수 있게 할 수도 있었다.
그즈음, 나는 친구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을 핑계 삼아 고향에서 다른 소도시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막무가내였다. 새로 옮겨 간 소도시는 무려 '군'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아주 소도시였다. 한때 시끄러웠던 LH사건의 주인공이 된 동네이기도 한 이 동네에는 행복주택과 신혼희망타운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었으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골 동네에 새로운 단지를 만들었으니 조건에 맞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서울에서는 LH든 SH든 공급하는 공공주택마다 경쟁률이 터져나가서 문제라는데, 이런 동네에서는 '자격완화' 타이틀을 건 재공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나는 이직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자동차 가액만 보겠다는 행복주택 자격완화 재공고를 보고 나사하나 빠진 사람처럼 바로 현장 추첨에 응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놀랐지만, 어차피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연어가 되어 강물에 인생을 맡겨봤다.
될놈될이라고 했던가. 내 번호는 첫 번째로 불렸다.
순간, 나는 그 지방 소도시에 가야 하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