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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록초록한 게 좋아.

서울생활 8년 차, 비자발적 서울 탈출기 4

by 내일 여기에서

행복주택의 원하는 동호수를 고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에도 성공했다. 서울보다 청년인구가 적어서 그런 건지 뭐든 경쟁은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뭐든 쉽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근 몇 년간에 가장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초등학생 때는 좋은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 중학생 때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기 위해서,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 최소 인서울을 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사이클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친구들을 거의 없었다. 어른들의 '좋은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어~'는 사실 하얀 거짓말이었다는 걸 대학교에 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또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학기 중에는 학점관리와 각종 연합 경제 동아리 활동, 방학 기간에는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원 수업 수강과 공모전 준비, 어학연수 등을 끊임없이 또 다녀야 했다. 서울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았고, 해야 하는 것도 너무나도 많았다. 잠깐만 긴장을 늦추면 나를 추월해서 저 멀리 가버리는 친구들에 한 템포 쉬어야지 하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적성은 무엇인지는 모르는 채 그저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복수전공을 선택하고 남들이 좋다 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나를 맞추는 일을 똑같이 반복하였다.


그 과잉 경쟁 사회에서 나는 '나다움'을 찾지 못했고, 사람이 꽉꽉 들어찬 지하철 같은 서울에서 숨을 쉬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그때의 나는 '초록초록한 게 좋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행복주택이 가지는 의미가 매우 반어적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뉴스에서 LH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따돌린다거나 아파트 이름을 붙여 거지라고 부른다는 보도를 본 뒤로는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낙원구 행복동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입주를 한 뒤 지내보니, 이곳의 행복주택은 대학생과 취준생, 사회 초년생들이 본가로부터의 독립을 조금 더 안전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행복주택에는 일부 취약계층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 직장 때문에 이 지역에 살며 마땅히 지낼 곳이 없는 청년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시골 군 단위 동네에 제대로 된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있을 리가 만무했으며, 취업을 하자마자 30평대의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모로 도박이기 때문에 아파트 형식의 원룸 혹은 투룸은 사회 초년생들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치밀한 계획도 없이 이곳에 왔지만, 어느샌가 내가 좋아하는 초록초록한 풍경에 둘려 싸여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논 풍경에 계절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KakaoTalk_20231110_095217803.jpg 벼 수확을 마치고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는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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