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 8년 차, 비자발적 서울 탈출기 5
이곳에서 생활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가 어렵고 조금은 지루함이 느껴졌지만 의외로 행복했다. 밖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밖에서 할 게 없어서 반강제적으로 집 안에서 할 일을 찾다 보니 집안에서 식물도 키우게 되었고, 매일 밖에서 사 먹던 저녁도 재료를 사와 유튜브로 레시피를 찾아보면서 집에서 만들어먹게 되었다.
최근에 토마토 종자를 얻어 토마토를 키우게 되었다. 다이어트 식단으로 매일 먹던 토마토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토마토 씨앗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하고 집중해서 봤던 것 같다. 수도 없이 먹었을 토마토였는데 그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겨를도 없이 빨리 먹어치우기 바빴다. 남들이 보면 우스울 정도로 토마토 씨앗의 생김새에 감탄하고, 흙을 덮어 심어주는데 손에 묻어나는 남은 흙의 냄새가 잠시나마 나를 숲 속에 데려다준 것 같은 기분까지 느꼈다. 그 토마토는 나의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쑥쑥 자라 꽃을 피우고 그중 몇 개는 토마토 열매를 맺었다.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열매가 빨갛게 익어 첫 수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내가 식물을 키워서 열매까지 수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고, 요리라고 해봤자 겨우 계란프라이나 해 먹는 게 다였다. 지금은 상추와 토마토도 키우고 때론 꽃도 사서 하루이틀 만에 죽이지 않고 일주일정도는 거뜬하게 키울 수 있다. 할 줄 아는 요리도 늘었다.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간단한 콩나물 불고기부터 해서 김치찜, 카레, 파스타정도의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와서는 나와 내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것들의 존재를 깨닫고 돌보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 바쁜 경쟁사회에 치여 서서히 잃어버렸던 성취감과 자신감이 올라갔고 '난 뭐든 할 수 있어.'라는 한 문장이 내가 무얼 하든 마음속에 점점 자리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