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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Jan 18. 2024

그건 니 생각이고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가수 장기하의 다소 별난 곡 "그건 니 생각이고" 가사 중 일부이다. 이곡은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할 때, 서로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내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을 때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영어로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라는 표현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역지사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살아보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고 어른이고 다들 자기 입장이 급급하지 대개의 경우 남의 입장까지 생각해 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수많은 것들이 내가 실제로 그 사람의 처지가 되고 나면 비로소 '아...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어릴 때는 굳이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내 입장만 생각하고 살아도 별 불편이 없었다. 내 한 몸 챙기며 살기도 바빴고 부족하기 짝이 없었으니깐. 물론 그 나이에는 남생각 안 하고 석자인 내 코만 챙기고 살아도 남들도 다 그러려니 이해를 해줬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외에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살피고 헤아려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부모, 자식, 배우자, 친구, 동료, 시장에서 만난 상인과 길 가다가 마주치는 행인마저도 내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 같은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살아가며 이해심과 포용력이 넓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폭넓은 인간관계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뤄낸 능력과 업적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저 떠오른 예로는 내가 그냥 인간에서 "엄마"가 된 것이다. 이것만큼 전후가 판이하게 다른 것을 보지 못했는데 예를 들어 아이가 없을 때는 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쩔쩔매는 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도대체 왜 저러나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는 아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부모를 보면 부모가 영 잘못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들을 비정상적이고 무능한 사람처럼 바라보곤 했었는데 내가 애를 낳아보니 그것도 넷을 낳아보니 애들을 원래 다 그렇다. 배고파도 울고, 불편해도 울고, 심심해도 운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음)


직접 해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겠다. 식당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팁을 내는 것이 세상 아까웠었다. 음식값도 비싼데 대체 팁을 얼마나 줘야 하나 매번 고민이었고 인색하게 굴기도 했었는데 고된 식당 업무와 박봉에 팁마저 없으면 생활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하고는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마트에서 캐시어로 일하기 전까지는 세월아 네월아 손이 느린 캐시어를 마음속으로 저주했었다. 계산대에 처음 서 본 신입에게 첫 며칠은 공포 그 자체라는 사실 역시 직접 그 자리 서본 이후에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예약하고 왔는데도 진료보기까지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직접 요리를 해보기 전까지는 음식 타박하는 사람이 얼마나 얄미운지 몰랐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본 일만큼은 그런대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경험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인내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족, 지금의 나에겐 특히 자식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나 역시 아이로, 누군가의 어린 자식으로 꽤 오랜 세월 살아봤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내 아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와 같은 경우인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당연한 순리이니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오늘도 별일 아닌 일로 아이를 혼내다가 '아 나는 왜 이런 걸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가?'하고 낙담했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아깐 엄마가 좀 심했던 거 미안해."하고 사과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하다. 


요즘따라 남의 신발 바꿔 신어보는 것이 영 쉽지 않다. 내 발에 잘 맞는 신발만 골라 신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그 길... 오늘도 나는 엉뚱한 신발을 신고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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