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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Feb 08. 2024

재수 없는 T발 남편을 고발합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아, 오랜만은 아니구나. 우리는 주 1회 이상은 카페에 간다. 심지어 나는 커피 맛을 잘 몰라서 커피 외 다른 음료를 마시지만 그래도 카페에 가는 것은 좋아한다. 이 근방에서 제법 분위기 있는 음악과 조명을 갖춘 카페라서 그런지 일요일 저녁인데 젊은 연인들이 빈 곳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남은 카운터 자리에 앉아 각자가 주문한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분명 같이 사는 사람이고 매일 만나는 사람이지만 도통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주 2회 만나 한 시간씩 같이 필라테스하는 친구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카페 분위기도 좋고 배부르고 따뜻하니 나는 모처럼 기분이 좋아 말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 오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한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한 분야에서 정말 오래 일한 전문가이지만 사업은 처음이기도 하고 대부분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일들이라 물심양면 도와주고 싶었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빨리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업 관련 회의를 하자고 하거나 이런저런 팁을 주고 잘되어가냐고 물으면 친구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지만 알아서 해볼게."와 같은 느낌이랄까? 친구가 소극적인가 싶어 내가 더 답답했지만 알고 보니 친구는 내 도움 없이도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척척 해나가고 있었고 나무랄 곳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기까지 했다.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도와주고 싶은데 뭔가 부담스럽고 불편한가 봐."하고 말하자 남편이 피식 웃더니 (이때부터 불안했다) "너부터 잘하면 네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와달라고 올 거야." 라고 팩폭을 날리는게 아닌가? 일단 이 한마디에 기분이 잡쳤다. 정말 순식간에 분위기 반전시키는 남편의 놀라운 능력이랄까?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반박 불가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된장... 그랬다. 실은 나도 아직 자영업자다. 하지만 사업은 실상 방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따금씩 주문 들어오는 게 신기할 정도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매번 남편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 훨씬 더 우울해진다.


게다가 항상 남편은 이런 식이다. 내가 진짜 심각하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 게 아닌데도 모든 것을 진지하게 다큐로 받아들인다. 그냥 좀 속상한 마음, 지치고 힘든 상황을 알아달라고 한 말인데 남편은 곧바로 "뭐가 문젠데?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뭔데?" 하며 분위기를 깨고 내 기분을 망쳐버린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모르는것 같아 친절히 알려도 줘봤다.


사업 시작한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데 내 생각처럼 되지 않네? (응 그랬구나 한마디만 하면 된다.)


사춘기 아이들 때문에 나도 힘들고 속상하네? (너는 내 남편이다. 육아대통령 오은영박사 코스프레 하지 마라)


운동도 하는데 살이 안 빠지네? (진짜 내가 왜 살이 안 빠지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냐?)


하지만 소용이 없다. 매번 남편은 이런 나의 감정을 학자처럼 파고들며 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번 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처절하게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내가 그것 때문에 불쾌했다고 하면 그건 내가 속 좁은 감정적인 인간이라 그런 것처럼 논리적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췟... 미안하지만 그저 재수 없을 뿐이다.


분명 재수는 없지만 가끔 유용할 때도 있다. (급작스럽게 시작된 훈훈한 마무리)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리하게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매사에 지나칠정도로 침착하고 이성적인 남편의 모습은 나를 속상하고 외롭게 만드는 불씨가 되기도 하지만 그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래, 연애할 때는 그의 이성적이고 샤프한 모습에 반하기도 했지. 한참 뜨겁게 연애할 때 남편은 나보다도 더 열심히 나를 들여다봐주었다. 그때는 그게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애초부터 남편에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했고 남편은 탐색하고 연구하고 분석하는 T(사고형) 성향이 강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MBTI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MBTI 성격유형에 T (사고형), F(감정형)이 있는데 T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해결책을 우선시하고 F는 감정적으로 위로받는 것을 우선시한다. 가장 쉬운 예로, 차 사고가 났을 때 사고 소식을 듣고 T 성향의 사람은 "사고 크게 났어? 보험사에는 바로 연락했어?"와 같은 현실적인 반응이 바로 나오고 F 성향의 사람은 "괜찮아? 안 놀랐어? 무서웠겠다?"와 같이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궁금해하고 공감한다고 한다.


참고로 나는 남편 없이 혼자 세 번의 차 사고를 당했고 그때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편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당연히 괜찮으니깐 전화를 했겠지만 두고두고 섭섭했다. 그래, 이런 나는 분명 F이다. 누가 맞고 틀리고, 누가 나쁘고 착하고의 문제가 아니란 것은 알지만 가끔은 T 성향의 남편이 참기 힘들 정도로 얄미운 것만은 사실이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운동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남편이 알랑가 모르겠다.


이상 남편 이야기를 했더니 역대급으로 최단시간에 글을 써내려갔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저같이 대문자 T 남편이나 남친을 두신 분들 어디 없나요?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법 공유

부탁드립니다. (과연 그런게 있다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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