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샌들러표 뻔하고 유치한 영화 리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때론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단 말이다. 굳이 작품성 같은 것을 따지지만 않는다면 아담 샌들러의 영화들은 킬링타임용, 기분전환용으로 최적화된 영화들이다. 보다가 잠시 휴대폰을 보거나 화장실에 다녀와도 내용을 파악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영화랄까?
코로나에 걸렸을 때다. 두 번째였고 거의 1년 만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의 증상은 굉장히 경미했다. 약 기운 때문에 비몽사몽 했던 이틀 정도를 빼고는 컨디션이 양호해서 격리하는 내내 좀이 쑤셔 힘이 들었다. 격리 중에 넷플릭스만이 나의 절친이 되어주었는데 침대에서 영화를 십여 편은 본 것 같다. 눈 뜨면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를 봤는데 긴장감이 가득하고 무거운 영화들을 보고 난 후에는 기분 전환을 위해 꼭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골라 보았다. 그러다 보니 아담 샌들러 주연의 영화는 무려 다섯 편이나 보았는데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드류 베리모어와 함께 나온 "블렌디드"는 아들 둘을 키우는 돌싱녀와 딸 셋을 둔 돌싱남이 자꾸 얽히더니 아프리카 여행에서까지 만나게 되고 일주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를 공감하며 사랑이 싹트는 내용인데 오랜만에 드류 베리모어 특유의 사랑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유쾌하게 보았다. 아담 샌들러는 "웨딩 싱어", "첫 키스만 50번째"에서도 드류 베리모어와 연인으로 나오는데 둘의 보여주는 케미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내용은 역시나 매우 뻔하니 마음 놓고 감상하면 된다.
"머더 미스터리"는 2탄까지 나왔는데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턴과의 케미가 역시 꽤나 훌륭하다. 암튼 결혼하고 처음으로 떠난 유럽 여행에서 황당하게 억만장자 살인 누명을 쓰고 부부가 사건을 파헤치며 우여곡절 끝에 범인을 잡는 내용이다. 영화 시작하고 20분쯤 지나 이미 본 영화라는 것을 알았지만 결말이 가물가물해서 결국 끝까지 보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다시 본 영화가 하나둘이 아닌데 나만 그런가?)
영화 "허슬"은 다소 뻔하지만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스포츠 영화로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터가 스페인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청년을 NBA에 데뷔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내용으로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아담 샌들러는 "해피 길모어", "워터 보이"에서도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를 선보였는데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굉장히 뛰어난 실력이 있으면서도 뭔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부족한 인간이 등장하다. 그리고 주인공은 결국 역경을 이겨내며 승리한다는 다소 뻔한 결말을 갖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온마음 다해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은근 스포츠 영화 좋아하는 듯.
"웨딩위크"는 몇 장면에서 정말 혼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는데 자녀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두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정말 황당무계하지만 그 안에 소소한 가족들의 사랑과 감동이 뿌려져 있어서 기분 좋게 볼 수 있었다. 진짜 아무 생각 안 하고 웃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나름 너무 재미있게 봐서 어느 무료한 주말에 남편을 설득해서 한번 더 봤는데 두 번째라서 그런가? 훨씬 덜 재미있긴 했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내가 본 아담 샌들러 영화 중 최고 수준이었는데 마이어로위츠 집안의 세 남매가 오랜 세월 쌓여있던 가족의 갈등을 풀어가며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내용으로 오랜만에 벤 스틸러와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으로 닮아있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아담 샌들러는 유명한 코미디 배우로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작가 출신으로 90년 후반에 웨딩 싱어와 워터 보이가 대박을 거두며 흥행 배우로 발돋움하게 된다. 개봉하는 많은 영화들이 흥행에는 나름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작품성에서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솔직히 그들의 혹평이 무리는 아니다. 대부분의 아담 샌들러표 영화는 유치하고 한심하고 말도 안 되지는 구석이 말도 못 하게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억지로 구겨 넣은 싸구려 감동과 해피엔딩은 진부하기 짝이 없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때론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단 말이다. 굳이 작품성 같은 것을 따지지만 않는다면 아담 샌들러의 영화들은 킬링타임용, 기분전환용으로 최적화된 영화들이다. 보다가 잠시 휴대폰을 보거나 화장실에 다녀와도 내용을 파악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영화랄까? 하지만 뻔한 해피 엔딩이라도 속 시원한 결말을 보고 나면 솔직히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한치의 반전도 없는 뻔한 결말이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를 보면서 조금도 긴장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그냥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 된다.
작품성 없는 저급한 B급 영화 취급을 받으면 좀 어떠랴? 의외로 아담 샌들러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배우 8위에 오를 정도로 흥행 실적도 대단하다는 사실. 나름 사업 수완도 좋고 또 그의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나만은 아닌 게 확실하다. 아무튼 이제는 어느덧 환갑을 앞둔 무표정 연기와 능청스러운 연기에 대가 아담 샌들러 덕분에 이번 나의 격리 기간이 아주 따분하지만은 않았다.
한두 시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킬링타임이 필요하시다면 추천합니다. 아담 샌들러표 뻔하고 유치한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