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배추 May 27.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33. 고소미 드실래요?

지금 내 눈앞에는 ‘고소미’가 있다. 농담 삼아 말하는 “고소미 좀 먹여야겠네.”의 고소미가 아닌, 고소한 크래커를 주장하는 과자 ‘고소미’다. 굉장히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심적갈등이 상당한 상황이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햄릿도 이 정도의 텐션은 못 느꼈을 것이다. 이유인즉슨, 건강식을 먹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누구와 내기를 건 것도 아니고, 고작 내가 나에게 혼자 다짐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깨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런 강한 결심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슬프게도 의지가 박약하다. 과자를 보면 입에 침이 고이는 건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도 원시인의 뇌를 가진 나이기에 참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과자에게로 쏠린다. 과자서랍이 바로 내 옆에 있어서 더욱 고통스럽다. 요즘 간식을 담당하는 주임님께서 과자의 다양성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 모양이라 서랍만 봐도 파블로의 개처럼 침이 꼴깍 넘어간다. 건강식을 하는 사람도 단 것이 싫은 것은 아니니까.


간식서랍을 보다 보면, 요즘 엠지들이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보인다. 그래서 안 먹을 것인데도 자꾸만 열어 본다. ‘요즘에는 어떤 간식을 좋아하나?’하며 내 작은 아이를 위한 벤치마킹도 되는 데다가 사람의 취향이 사소한 물건에서도 드러난다는 게 참 재미있다. 내 옆 대리님은 애사비(애플사이더비니거)에 빠져 계시고, 간식을 준비하는 주임님은 아무래도 초코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과장님들은 압도적으로 쌀과자를 선호하시는데, 돌체구스토는 찬밥신세다. 심지어 스타벅스캡슐인데도 아무도 스벅을 안 내려 먹는 걸 보면, 그 누구도 돌체구스토를 닦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역시 맛보다 청결인 건 세대를 가로질러 한 마음이다.


난 결국 ‘고소미’를 도로 넣어 두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소한 것이라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나면, 요즘의 나는 정신병자처럼 나를 치켜세우고 만다.


“이야, 잘하고 있네. “


너무 정신이 아파 보이는 행동이지만 의외로 효과가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그까짓 거 내가 해주지 뭐.


오늘은 집에 가서 이번에 새로 산 크롭탑 상의를 입고 시원하게 창문을 연 상태로 글을 써야겠다. 작고 사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감의 옷을 입고 행복한 일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지.

작가의 이전글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