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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37. 여행 가기 싫고 여행 가고 싶다.

by 남배추

초능력에는 여러 가지 초능력이 있지만, 그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순간이동을 소유하고 싶다. 어디로 이동하든지 그 이동시간을 고려하지 않아도 뿅 하고 도착할 수 있으니 출근걱정할 필요도 없고, 다시 집으로 뿅 하고 돌아오면 그만이니 여행짐을 쌀 필요도 없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로 뿅, 등산을 하고 싶으면 산으로 뿅, 이 얼마나 탐나는 초능력인가. 물론 나쁘게 쓰이려면 한정 없어서 은행금고에 뿅 하고 나타나 돈다발을 들고 다시 뿅 하고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초능력계에도 나름 법도가 있으리라 믿어 본다. 아님 말고.

출처: comicbook.com, dragon ball teleport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여행을 가고 싶은데 여행을 가기 싫기 때문이다. 아이가 점점 커감에 따라 나랑 놀아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분주하다. 조금만 지나면 사춘기가 시작될 것이고, 그럼 볼에 뽀뽀하던 아이는 하루아침에 다른 아이가 된 것처럼 문을 쾅하고 닫고는 친구들하고만 놀려고 하겠지? 내일이 6월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오한이 든다. 그래서 마음이 바쁘다. 빨리 더 같이 놀아야만 한다. 물론 회사 다녀오면 쉬고 싶고 혼자만의 동굴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 내 마음도 두 개이니 내 몸도 두 개이어야만 할 것 같은데 몸은 하나이니 여행이라도 가야겠단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집 근처에서도 집에서도 그런 추억을 못 만드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양한 지역과 나라도 같이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놀러 갈 궁리를 해보는데, 일단 돈도 돈이지만 이동하는데 어찌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차가 없이 지내는 뚜벅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지만,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도가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순간이동이란 초능력. 그럼, 난 이 초능력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1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능력만 타고나고 말았다.


오늘도 소파에 누워 이런 생각을 하며 말 다한 셈. 그래도 이런 능력이라도 있기에 꿈도 꿔보고 허허 웃는 거 아닐까. 오늘은 평소 절제했던 빵을 거의 1년 치 한꺼번에 먹은 탓에 두뇌가 팽글팽글 잘도 돌아간다. 게다가 그 힘으로 아이와 함께 반값세일하는 스테이크도 사고, 굉장한 시클리드 두 마리를 키우면서 한 마리를 또 들여왔다. 송화버섯인가도 샀는데 덤으로 몇 개를 더 넣어주셨다. 아드레날린은 사라지기 마련이라 지금은 또 배터리 나간 갤럭시 2의 형태로 전원이 깜빡이고 있지만, 난 오늘도 꿈꾼다. 순간이동을.

나의 뇌는 빵을 무척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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