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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n 21.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53. 떡볶이

소울푸드란 단어를 처음 들었던 건 뉴욕에 갔을 때였다. 할렘에 가면 소울푸드를 먹어야 한대서 대단한 기대를 했는데, 와플에 닭다리튀김 하나가 딱 올려져 있더랬다.


‘엥? 와플토핑이 닭다리??’


그전까지 이런 조합은 본 적이 없어서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소울푸드를 먹는데 한국이 생각났다.


‘한국 후라이드 치킨 먹고 싶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찐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는 건, 후라이드 치킨도 아닌 떡볶이가 아닐까 싶다.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고추장에 설탕, 간장 정도만 들어갔을 뿐인데도 입에 확확 감기며 군침이 돈다. 게다가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컵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기에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나도 왕왕 사 먹을 수 있었다.


아궁이에 연탄을 때며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윗집은 2 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마루가 있는 거실이 있었고, 집안에 화장실이 존재했다. 공동화장실을 쓰는 내게는 대궐 같은 곳이었다. 그

두 집 가운데서도 큰 집에 같은 나이대의 여자아이가 이사를 오게 되었다.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우린 친구가 되었다. 서로 학교성적도 비슷했다. 2층에 사는 그 아이는 2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1층에 사는 내가 1등을 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친구를 무척 좋아했던 것만은 확실한데, 어느 날 그녀가 이사를 간다고 하지 않겠는가. 몹시 슬펐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상실감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친구가 많았지만, 나는 그녀 말고는 친구가 없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자 나의 친오빠는 나를 데리고 조용히 본인이 좋아하는 떡볶이집에 데리고 가더니 말없이 2인분을 시키더랬다. 우린 침묵 속에 떡볶이를 먹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음식으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 많은 기억이 있을 텐데 고등학교 때까지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질 않아서 잘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친구가 수능시험을 망치고 슬퍼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녀를 이끌고 떡볶이를 사줬다고 한다. 슬퍼하는 그녀를 이끌고는 떡볶이집으로 데려가더니 떡볶이를 사서 그녀에게 건넸다나 어쨌다나. 사실 내가 사준 건 기억을 못 해서 정확한 건 모르겠다. 다만, 막상 시험채점을 해보니 내가 더 망해서 그녀가 다음 날 큐빅이 박힌 은귀걸이가 들은 작은 상자를 나에게 건넸던 게 기억난다. 내가 받은 첫 귀걸이였다.


그래서인지 조금 피곤하거나 우울할 때면 자꾸 떡볶이가 당기고 만다. 탄수화물덩어리에 진득한 양념이 몸에 좋을 리도 없는데 끊을 수가 없다. 오늘은 즉석떡볶이사장님께서 특별히 더 챙겨주셔서 3인분이 마치 5인분 같아져 버렸다. 포장을 해와서는 라면사리까지 넣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로 큰 프라이팬이 가득 찼다.


이렇게 소울푸드를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평온해지니 어쩌면 신체에 좋은 음식과 정신에 좋은 음식이 언제나 비례하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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