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인형 닮았던 내 어린 시절
머리 부분에서 넘어가질 못하고 있지만, 곱슬머리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다. 어렸을 때 나는 직모 중에서도 상급 직모여서 굴곡 하나 없었다. 머리숱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는데, 이 엄청난 직모를 하나로 묶으면 정말 볼만했기 때문에 파마를 주기적으로 시켰다고 한다. 분명 우리 집은 가난했는데 빈약한 머리숱은 그냥 보고 넘기기 어려웠나 보다. 물론 정수리의 허전함을 가리기 위한 뽀글뽀글 파마와 비슷했던 지라, 미를 위함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파마가 머리의 모질도 변화시켰는지 아니면 사람이란 어느 순간 그런 때가 있는 건지 파마를 하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구불거리지 않겠는가.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 뒤로 몇십 년을 더 곱슬머리로 살아야 했다.
곱슬머리 중에는 완만한 굴곡을 그리며 귀여운 곱슬머리가 있는 반면, 규칙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글자글한 곱슬머리가 있다. 슬프게도 난 후자였다. 머리를 말릴 때면 되도록 앞머리는 쭉쭉 잡아당기며 드라이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 천마리의 돼지꼬리가 내 앞머리에 달려있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나의 소원이 어른이 되어 매직파마를 하는 것이었을까.
이 곱슬머리는 동료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주변의 곱슬머리들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직모 너희들이 우리 곱슬머리의 애환을 아냐’며 곱슬머리를 위한 배추일보까지 발간하는 상황까지. 연습장 종이를 쭉쭉 찢어 만든 허접한 일기형태였지만, 곱슬머리들끼리의 끈끈함은 더 강력해져 이런 핀잔까지 들었다.
“곱슬머리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냐”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도 이제 매직파마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갑은 홀빈했고, 조금이라도 더 싸게 하고자, 이대에 위치한 미용실에 찾아가게 되었다. 문제는 매직파마를 끝낸 나의 머리는 다 타고 더 타서 원래의 곱슬머리보다 더 흉한 머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울고 싶었고, 울고 싶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머리카락 때문에 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머리시술비까지 악 소리 한번 못하고 몽땅 지불했지만, 억울해서 겨우 던진 한 마디가,
"머리 다 탄 거 같아요."였다.
‘같아요’라는 표현을 쓰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얼토당토 안 하다. 같아요라고 쓸 필요가 없었다. 머리가 다 탄 건 팩트였으니까. 미용실에서는 나의 머리카락을 보더니 군말 없이 클리닉쿠폰을 줬고, 나름 뿌듯해하던 나는 결국 그 쿠폰을 쓰러 이대까지 가지는 못했다.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고 또 들고 나니 이상하게 머리카락의 굴곡짐이 조금씩 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분명 나의 유전자는 이미 정해져서 더 이상 바뀔 리가 없는데, 유전자가 발현되는 회로가 바뀐 건지, 아니면 인간모발의 상태가 나이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건지, 지독한 나의 곱슬머리는 점점 부드러운 직모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세월의 풍파에 내 머리카락도 어쩔 수 없이 유들유들해진 걸까. 어쩌면 내년쯤에는 더 이상 매직파마에 연연할 필요 없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빌고 또 빈다.
내일은 뻣뻣해도 좋으니 내 직모를 돌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