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털이불

빨주노초파남보 명주솜이불에서 오리털이불로

by 남배추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하지만, 이불을 담아서 오기에는 부피가 너무 커서 겨울 옷가지들과 당장 필요한 식기류만 가져왔고 우리에겐 이불이 없었다. 은근 날씨가 추웠다. 가구가 하나도 없었던 상태였기에 맨바닥에서 어떻게 잠을 청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나만 이런 걱정을 하던 것은 아니었더랬다. 우리집에서는 우리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이불은 있냐며 물어보셨고, 가장 아끼던, 그래서 설날이나 큰 명절이 아니고서야 전혀 쓰지 않는 이불을 꺼내어 아파트에 가져다 두셨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화려한 명주솜이불


좋은 솜이 들은 고급이불이라며 재차 강조하셨다. 분명 색도 화려하고, 명주솜이지만 십 년 정도밖에 안 된 침대생활에 이내 익숙해지고 말아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곤 했다.


"아이고 아야.. 온몸이 아프네 그냥."


솜으로 짜인 이 이불은 큰오빠의 와이프인 새언니가 시집을 올 때 가져온 이바지물건 중에 하나라고 했다. 너무 아끼다 보니 자주 쓰지 못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겉면을 세탁하고 다시 손바느질하는 게 너무 벅차서 지금도 잘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 그 힘든 빨래와 바느질을 했다는 말에 눈가가 시큰해졌다. 사실 맨바닥이나 이 명주솜이불이나 나에겐 큰 차이가 없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하려다가 그 말을 목구멍으로 다시 넘겼다. 너무 잘 쓰고 있다고,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우리가 이 이불을 돌려주고 나면 분명히 겉면을 빨고 손바느질을 다시 할 텐데 그 수고가 너무 염려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직접 손바느질할 부지런함은 또 없었기에 그냥 마냥 훗날이 걱정되었다.


드디어 미국에서 짐이 도착하고, 침대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푹신한 곳에서 잘 수 있게 된 날, 이 명주이불의 운명을 결정해야 했다. 아름다운 이불이지만 앞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형태이니 이만 놓아주자고 했다.


우리집은 대답을 망설였고, 그래도 새언니가 가져온 이바지이불인데 어떻게 그러냐면서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곧 80대의 할머니가 그 이불을 간수한다는 건 너무나 벅찬 일임을 깨달았는지, 겉면의 실크처럼 된 빨주노초파남보 부분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선물로 들어온 건데 그냥 버릴 수 없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곱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그 실크 부분을 오려냈냐고? 다음날, 그 이불을 같이 버렸다. 너무 무거워서 내가 다 짊어질 수가 없어서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지정장소로 버리러 나갔다. 갑자기 왜 마음이 왜 바뀌었냐고 묻자, 생각해 보니 내버려두어보았자 짐만 될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바지선물로써 마음 쓰라려하던 모습이 분명 어제였던 것 같은데 역시나 사람의 편의에는 못 이기는 마음은 어쩔 수 없고,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불을 다시 새로 사게 되었는데, 큰 마음먹고 오리털이불을 샀다. 물론 가격 때문에 바로 사지 못했다.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기를 1년. 그 1년 동안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는 사이 같은 이불을 10만 원이 더 올랐고, 나에게 도착했을 때는 심지어 10만 원이 더 오르기도 전 가격의 택으로 도착하여 사람을 분이 나게 했다. 그래도 뭐 이미 오른 가격 어쩌겠냐 싶어서 착잡한 마음으로 택을 떼고 한껏 눌러져서 온 오리털이불을 펴고 나니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게 마치 베이킹 같았다. 이불자체도 어찌나 가볍던지.


이제 하나의 법칙이 생겼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리털이불을 접어서 팡팡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서로 협조하는 것. 그래서인지 나의 작은 친구는 틈만 나면 내 방으로 가서 침대 위를 날아올라 오리털이불에 착륙한다. 텀블링하듯이 쪼그라드는 오리털이불을 보며 한껏 웃는 그. 나도 똑같이 지 오리털이불에 점프해서 내려앉았더니 내 작은 친구가 대성통곡을 했다나 어쨌다나.

빨주노초파남보 명주솜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