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스케이트를 들고 브라이언트파크로 Go!
내가 있던 시기의 뉴욕겨울은 브라이언트파크의 분수를 얼릴 정도로 혹독하게 추웠다. 눈이 가로로 흩어져 내려 하얀 점으로 온 세상이 덧칠되던 그 시절. 그때는 라디에이터를 틀고서는 이불 안으로 숨는 생활이 일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후 4시가 되기도 전에 햇님이 전부 사라지는데, 일조량이 부족해지고 말아 버리기 때문에 힘차게 돌아다닐 기운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스르르 사라지곤 했다.
그래도 뉴욕의 겨울은 아름답다. 특히, 눈이 가로로 내리든 세로로 내리든 하얗게 변한 뉴욕의 거리는 평소보다 더 매력적이므로, 겨울에는 두툼한 재킷에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꾸역꾸역 나가면서 나는 마치 뉴욕직장인처럼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맨하탄에 겨울이 오면, tree lighting event이 시작되고, 산타복장을 하고 다니는 Santa day가 다가오며, New York Holiday Train Show 등 이 겨울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일들이 밖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나가지 않고는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드니 어쩔 수 없다.
그중, 겨울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체크했던 것이 브라이언트파크의 아이스스케이팅스케줄이었다. 브라이언트파크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본사 스폰서로 진행되는 윈터랜드는 공짜 스케이트를 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물론 스케이트신발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 이용료가 공짜였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맨하탄에서 공짜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니, 나는 부랴부랴 스케이트용 신발을 샀다. 물론, 스케이트를 빌릴 수도 있고 빌리는 사람도 많은데, 비쌀 때의 가격은 딱 55분 신는데 약 50달러씩이나 한다. 1분에 1달러, 사서 10번 공짜로 타면 500달러를 버는 법이니, 사는 게 남는 것이다.
물론 들고 다니기 쉽지 않다. 하지만 난 정해진 예산 안에서 움직이는 전업주부로써 자기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지출은 대단히 한정적이었기에, 언제나 스케이트신발을 등에 짊어지고 갔다. 무겁기도 했고, 스케이트신발을 짊어지고서는 오랜만에 나간 미드타운에서 주변 구경하기도 힘들었지만, 공짜 아이스스케이팅이라는 말에 매주 화요일 아침이 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무조건 브라이언트파크로 향했다. 가끔은 너무 무겁고 스케이트 타기가 싫어서 비가 오라고 기우제를 지낼 뻔한 적도 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속박한 나와의 약속. 그렇지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은 두 발로 얼음 위를 가로지를 수 있게 되었고, 땅만 보고 타는 스케이팅이 아닌 주변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며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날을 감사해야 할지도.
단점도 물론 존재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원래부터 브라이언트파크는 뉴욕도서관 바로 옆이라 관광객들이 꼭 들려보는 장소이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빌리지도 형성되며 조금만 걸으면 5번가 거리도 멀지 않다. 그렇기에 겨울에는 이 브라이언트파크에서 아이스스케이팅을 하고자 예약이 치열해진다. 코로나시절에는 텅 빈 맨하탄에서 나 혼자 스케이트를 탈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은 없다. 누군가를 스케이트의 날카로운 칼로 다치게 할까 봐, 혹은 미끄러져서 내가 다칠까 봐 아찔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크리스마스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줘야 크리스마스 기분이 더 사는 것 같다.
물론 브라이언트파크만이 아니라, 센트럴파크에도 아이스스케이트장이 있는데 센팍 안에 존재하는 아이스링크라는 말에서 이미 매력도 100%를 달성하지만 공짜가 없다. 뉴욕시민에 한해서 공짜로 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1년에 1회 한정이라 아쉬운 수치이다. 티켓값은 시간대별로 다른데 기본적으로 30달러가 넘지만, 수많은 고층 빌딩이 보이는 배경 사이로 커다란 음악사운드가 펼쳐지는 맨하탄의 공원 안에서 스케이트를 탄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게임 끝이다. 그야말로 내가 맨하탄을 배경으로 찍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센트럴파크아이스링크는 원래 트럼프 전 대통령의 회사소속이었는데, 이제는 뉴욕 시의 소속이 되면서 인터넷으로 예매가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무조건 줄을 서서 기다린 후, 현금으로만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했기에 추운 겨울에는 도저히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온라인으로, 심지어 카드로도 입장권을 지불할 수 있다. 가격이 비싼 대신에 뉴욕뉴욕이 흘러나오는 센트럴파크의 아이스링크는 모든 이들의 추억으로 남기에 추천하고 싶다.
그래도 가장 많이 간 스케이트장은 집에서 가까웠던 브룩필드 아이스링크였다. 협소하고 울퉁불퉁한 표면 때문에 난이도가 있지만, 스케이트 신발 대여까지 합해서 19달러에 사용가능했으며, 집에서 얼마 안 걸리니 큰 부담이 없었다. 동네에 이렇게 다양한 문화시설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특히나 아는 아이들끼리 만나면 이곳이 필드트립이 되며, 사교의 장이 된다. 아쉽게도 록펠러의 아이스링크는 못 이용해 보았지만 나머지는 충분히 여러 번 갔었기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난 그때 너무 열심히 탄 나머지 스케이트가 싫어지고 말아 우리나라로 돌아온 뒤에는 전혀 타고 있지 않기에 더욱더 후회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