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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22.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이야기

2. 모닝미라클과 글쓰기

출근시간이 불규칙적이었던 집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전형적인 올빼미형이 되었다. 거실도 없이 방 하나에서 지내던 시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창문의 불이 하나둘씩 꺼질 때, 아빠가 귀가를 하거나 일을 나가면 우리는 그에 따라 일상을 지냈다. 즉, 아침 일찍 일어나 불을 켠다는 건 모두가 깨어야만 한다는 것이었기에 새벽에 아궁이가 있는 곳에서 부엌일을 하는 것 외에는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 방이 생겼을 때조차 그 생활패턴이 없어지는 건 아니므로 모든 스케줄은 올빼미형태로 돌아갔고, 아침은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시작이었다. ”10분 만 더 “를 외치다가 부모자식 간에 원수가 될 뻔도 했다. 그런데 모닝미라클이 유행이란다. 새벽에 일어나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가능하긴 할까? 아침만 되면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얇게 뜬 눈으로 겨우 등교나 출근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1분이라도 더 잘 생각이 아닌, 1분이라도 먼저 깨어 있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하긴 했지만, 밤이 깊게 내려앉았을 때 자정에 시작하는 라디오를 듣는 건 올빼미로써의 리츄얼이었다.


그런데 모닝미라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으니 팔랑귀인 나로서는  돈도 들지 않는 모닝미라클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결혼한 뒤였기 때문에 개인공간이 생겼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했다. 첫날은 30분을 일찍 일어나 보고, 그게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시간을 앞당겼다. 상상과는 다르게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차 한잔을 마시는 것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아침시간은 조금만 느긋하게 보내도 밤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분주했다. 어쩌면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빴을지도.


"이럴 바에야 그냥 늦게 자는 게 낫겠다."


머릿속에 항상 ‘그냥 하던 대로 살자. 나는 원래부터 올빼미였다. 굳이 남들이 하는 대로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기가 생기면 어떻게든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기에 꿋꿋하게 버텨 보았다. 어떤 날은 두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도 했고, 다른 날은 깨어 있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먹기를 반복했다. 해볼 때까지 해보다가 안되면 그때 가서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는데, 지금은 밤 10시만 되면 졸리고, 대충 눈을 떠보면 새벽 5시이다. 드디어 올빼미에서 얼리버드로 변형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통 무엇을 하냐고 한다면, 멋진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게 머쓱하다. 대충 스트레칭을 하며 온몸을 풀어주고서는 아침을 먹는 일에 1시간이 넘게 훌쩍 쓰인다. 조금 더 꾸며서 말하고 싶은데,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스트레칭하고, 더 이상 늙지 말라고 페이스요가마저 끝내고 밥을 먹고 나면 이미 7시다. 그러고 나서 약 20분 동안 글쓰기를 하는데, 글로 밥을 벌어먹고 싶은 사람으로서 블로그와 브런치, 인스타를 모두 합쳐 고작 20분을 투자하는 건 사실 얼토당토않은 행위이다. 어쩌면 스트레칭을 포기하고 글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동요치 않는다. 구석구석 아픈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내가 나에게 단호히 거절한다.


대신에 책 읽기는 허투루 하는 법이 없고, 특히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어서 하루에 많으면 1권, 적으면 일주일에 1-2권을 독파하고 있다. 어쩌면 내 적성에 맞는 건, 작가가 아닌 다독가인지도 몰라서 약간은 씁쓸하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내가 집을 사랑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가구가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인테리어를 해서 들어온 것도 아니지만, 처음으로 햇볕이 제대로 들어오는 커다란 창을 가진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라 마음이 편하다. 원래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혼자서도 야무지게 논다. 이런 의미에서 소파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 잠이 들다가 깨어나 다시 책을 보는 세상 한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나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산미가 강하지 않은 커피와 건강식만 제공된다면 나는 분명 별 불만 없이 책을 읽으며 농을 부리면서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평생 잘 지낼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란, 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회사는 가기 싫으나, 그나마 하얀 종이 위에 활자로 되어 있는 글자체를 사랑하니 이왕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면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아니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통탄할 일이다. 글쓰기가 쉬운 길도 아니거니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서 허둥대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뒤집기도 안 되는 애기가 어떻게든 뒤집어 보겠다며 노력할 때 받는 이목이 좋아서 노력해보고 마는 애기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뒤집기도 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뭔가 길이 이어지고, 어디론가 데려가리라 그냥 무작정 믿어 본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때로는 단어도 잘 생각나지 않고, 억지로 손가락을 두드려 가며 글을 뽑아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쓴 글을 읽다 보면, ‘아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구나.‘하고 신기할 때도 많다. 그래서 오늘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글자를 두드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책을 들고 잠이 들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또 출근준비를 해야 하니 이 간극은 도대체 언제 좁혀질지 알 수가 없다.


그다지 자본주의적 소비를 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도 빌려 읽으며 사는 나의 이면에는 보석반지사이트란 사이트는 다 둘러보며, 디엠을 보내는 나 자신이 있는 것처럼 절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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