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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01.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11. 미신

어제 소금을 뿌려주었어야했는데 그냥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왜 소금을 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미신이란 건,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그 뿌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로부터 믿고 있었던 과학적 근거 없는 믿음이다. 아무래도 통제불가능한 현대사회에 있어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통제가능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 없어!”라는 얼토당토않는 인과관계를 성립시킨 것일게다.


집 안에 조화를 두면 안됩니다.

문 앞에 소금산을 만들어 두면 액운을 막을 수 있어요.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됩니다. 등등


말도 안되는 미신들은 우리 사이에 깊게 파고 들어 AI가 인간의 지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바둑놀이를 하는

세상에서도 지켜진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인간이 인간다운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기계와 인간의 전쟁이 일어나서 인간이 이기게 된다면, 그 원인은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사고판단을 예측할 수 없어서 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몇 십년 전, 아빠의 차가 나오던 때였다. 차가 생계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날은 중요했다. 돈도 없고, 운도 따라주지 않는데, 세상 스트레스는 다 피하고 사는 아빠덕분인지 우리집은 차넘버 나오는 날이 살얼음판이었다. 차넘버에 숫자 4가 들어가면 재수가 없다고 했다. 하필 그 날, 어렸던 나는 울 일이 발생했고 그 날 숫자 4가 들어간 차넘버를 받았다. “계집애가 재수없게 아침부터 울어서 이런 거지같은 차넘버를 받았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차넘버와 울음의 상관관계는 전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지만, 그 비난의 강도가 대단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겹겹이 쌓이다 보니 일할 때 T성향을 가진 나는 미신만큼은 극 F가 되어 조금이라도 어기면 불안했다.


어쩌면 인생의 고통이 디폴트값인 곳에서 나름 살아내고자 하는 한 방편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깨지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좌불안석이 되고 마는 강박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아 혼자 타파 중이다. 물론 적당량의 강박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게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 인생의 빨간불이 켜졌다고 봐야할 것이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된다고 손바닥을 맞던 때에 저항하여 일부로 내 이름을 빨갛게 써보기도 하고, 시험 보는 날에는 칼질을 열심히 해서 사과를 꼭 썰어 먹는다. 그리하여 이렇게 미신을 깨더라도 아무 일 없음을 몸소 체험하는 중인데, 말이 쉽지 어려울 때도 있다.


나에 관계된 일이라면 의연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관련되고 말면, 미신이라도 지켜서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러면서도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을 꿈꾸고 마니, 인간이란 어쩌면 양가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가득 찬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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