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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30.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이야기

10. 불편한 전화

내 안의 화는 절대로 사라질 일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활활 타오르다 못해 재가 되어 검게 변한 용암처럼 시꺼멓게 변한 마음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산이 폭발하면 그 주변은 쑥대밭이 되지만, 그 후에는 땅이 더 비옥해진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오늘은 어떤 화가 나신 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법 규정이 너무 어렵게 바뀌는 통에 이해하시는데 조금 오래 걸리셨는데, 그 사이의 답답함과 오해로 매우 격앙되신 상태셨다. 그런데 별별 일을 다 겪고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거쳐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마음이 덩달아 요동치지 않더랬다.


예전 같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을 텐데, ‘그럴 수도 있었겠다.’싶은 마음과 ‘기운도 좋으시네.’라는 생각이 들 뿐, 그 분의 억울한 마음을 차분히 듣을 수 있었다. 들으면서도 어디서 치고 들어가 설명을 해드려야 서로가 기분 상하는 법이 없이 편할까 하며 재즈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말의 마디를 재어 보고 있었지만.


‘여기다.’싶은 구간이 나와서 딱 들어가 설명을 해드리고 나니 목청껏 화낸 게 멋쩍으셨는지 갑자기 칭찬을 해주시면서 끊으셨다.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는 직장인데, 예전에는 안 괜찮았고, 지금은 괜찮으니 신기하다.


누군가 화를 내면 무의식의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가슴이 쿵쾅거렸던 마음이 이제는 사그라들며 관조의 자세로 관찰한다. ‘이 사람은 화가 나도 존대어를 놓지 않는구나’에서 시작해서 ‘저분은 여러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겠구나’까지 점쟁이처럼, 때로는 심리학자처럼 그냥 그 자리에서 지켜보며 듣는다.


나 또한 뭔가 일이 잘 안 되거나 내 마음 같지 않을 때는

나를 쳐다본다. ‘그랬구나’, ‘속상했겠구나’라며 들어주면 내 마음도 조금 수그러드는 기분이 든다. 물론 직장생활이 꽤나 오래되다보니 마음이 아직 방방 뜨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꾸며내는 것도 아주 능통해졌다. 나이와 직장경험 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가진 가면을 조금씩 고급지게 튜닝해나가고 있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 배운 건, 전혀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일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지기도 하고, 싫었던 일들이 마냥 싫어지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내일은 내일의 고통이 있을 것이니 난 오늘의 고통까지만, 딱 그만큼만 느끼고 나머지는 기뻐하며 살아야지.


이런 헛소리나 하는 거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맛있는 걸 먹어야 겠다.

일단 내 장에 사는 유익균 밥부터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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