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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02.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12.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고개를 들어 보니 주변에 쑥버무리 같은 나무가 잔뜩 피어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나무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까이서 보니 하얀색 삐죽삐죽이들이 꽃처럼 얼기설기 붙어 있는 모양이다. 산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분명, 새싹이 자라고 있는 정도의 꿈틀거림만 느꼈을 뿐인데, 하루 걸러 올라가 보면 어느새 잎이 울창해져 있어 그제 온 곳과 같은 장소인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이 변화라는 게 ‘분’ 단위로는 보이지 않아도, 하루 이틀만 있어도 영화세트장을 완전히 바꾼 것 마냥 달라지니 영화'트루먼 쇼'를 찍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계절 중에는 지금 딱 이 시기의 온도를 좋아하는데,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감각이 좋기도 하고, 나무들의 초록과 연초록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물론 늘어나는 벌레 때문에 곤욕스러울 때도 있는데, 저번에는 하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애벌레가 내 옷 위에 안착했더래서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겨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날씨는 더 이상,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이 아닌, ㅂ여름ㄱ겨울의 계절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 ㅂ이 조금만 더 연장되어 ‘보’까지만 가도 좋을 것 같다.


우리집의 식물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키배틀이라도 열린 것처럼 열심히 자라고 있다. 주는 거라고는 물밖에 없는데, 이렇게 쑥쑥 자라주니 고마웁기 그지없다. 특히나, 열리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강낭콩은 벌써 5일 만에 20cm나 커버려서 이탈리아이름인 ‘안드레아’로 개명해 주었다. 처음 이름은 ‘김정은’이었는데, 몸집 크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내 작은 친구가 지어줬었다. 잘 이해 안 갔지만, 이해 가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선인장에서도 갑자기 꽃인지 뭔지 모를 줄기가 하나 나오더니 하늘을 찌를 듯이 커져가고 있는데, 원래의 모양과는 사뭇 다른 줄기라서 약간 외계인을 보는 기분이다. 물도 안 주고 약간은 외진 곳에 홀로 있었는데, 꿋꿋이 버텨내더니 새로운 줄기까지 갑자기 뿜어내는 모습에 정말 외계식물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식물인데도 자꾸만 멀찍이 보게 된다. 지금은 줄기가 위로 쏟아 오르다 못해 꺾어지고 말았는데, 뭔가 꼿꼿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받침대를 만들어줘야 하나 고민이다.


나도 언젠가 이 식물들처럼 어느 순간 우뚝 커져 있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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