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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03.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13. 반짝거리는 보석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이라는 전시를 하길래 얼리버드로 구매하였다. 생각해 보면, 미국에 살 때 뻔질나게 가던 곳이 미술관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공짜로 전시를 볼 수 있을 때마다 학교 출석하는 것처럼 열심히 다녔다. 입장권 없이 미술관입장이 가능한 날은 줄의 대기가 어마했고, 아이의 픽업시간 때문에 30분밖에 못 본다고 한들 일단 무조건 갔다. 익숙한 미술관에서는 바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 앞으로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 앞에서 그림의 기법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는데, 그게 신기했던지 미술관직원은 그런 나에게"대단하지? 살아 움직일 것 같아."라고 말까지 걸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 게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집에만 있는다. 모든 에너지를 미국에서 쓰고 온 건지 집을 나서기가 힘들다. 소파가 나를 부르면, 마법에 홀린 사람처럼 일단 눕고 봐야 하고, 몸을 뉘이고 나면 일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힘을 내어 오랜만에 집을 나서기라도 하면, 지하철에서부터 사람들이 가득하여 금방 지치기 일쑤이고, 그럴 때면 ’시원한 탄산수에 얼려 놓은 레몬 하나 띄워먹으며 책을 읽을걸.‘이라는 생각만 가득해진다. 한 번은 너무 궁금했던 화가의 작품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줄지어 봐야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훑어보는 식으로 쓱 둘러보다 나왔다. 어쩌면 미술관에 그렇게 다녔던 건 미술에 대한 열정보다는 그날이 아니면 입장권을 사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 더 강렬하게 작용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미술과 음악을 심도 있게 알고 있는 교양인이 되고 싶은 것도 있다. 인생에 있어서 이런 문화활동은 꿈도 꿀 수 없는 가정환경이었는데, 대학교 동아리 후배가 클래식공연 티켓이 2장 생겼다며 같이 보자고 했다. 인생 처음의 음악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수 없어서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솔직히 그날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클래식공연을 처음 본 나는 ‘나라는 사람이 이제 음악회도 올 수 있게 되었구나.’라며 나르시시스트적인 생각을 했던 것과 후배가 갑작스럽게 고백했던 것만 흐릿한 기억으로 날 뿐이다. 공짜공연까지 보고 거절하기도 멋쩍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 좋아해 준다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연하는 절대로 사귀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웃긴 건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지금 결혼한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정신연령은 내가 이백만 배 더 어리지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은 결혼반지를 어떻게 리세팅하면 좋을까이다. 유행에 뒤처지고 불편해서 조금 더 세련되게 바꾸고 싶은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고, 나의 변덕도 대단하여 선뜻 선택을 못하고 있다. 그런 때, 보석전이 딱 열린 것이다. 처음 보는 보석 관련 전시회라서 의미가 깊고, 때마침 리세팅에 미쳐있었기에 집순이인 내가 직접 예매까지 했다. 보통 등산 빼고는 목덜미를 잡혀 끌려나갔던 내가 전시회를 가자고 하여 남편은 굉장히 놀라워했다. 사실 거기까지 이동하는 동안, 사람에 치여서 멘탈이 탈탈 털릴까 걱정이다. 어쩌면 보석을 잔뜩 보고 온 나의 마음에 허영심이 잔뜩 낄까 봐 남편이 더 무서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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