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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04.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14. 멀티버스

퓨처노멀이라는 책을 읽는데 멀티버스이야기가 나왔다. 페이스북이 회사명을 메타로 바꿀 때까지만 해도 저렇게까지 할 것 있나 싶었는데, 이제 가상세계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아바타는 사용하고 있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카톡이란 매체를 통해 만나고 있으니까. 프로테우스효과에 따르면, 가상세계에 설정된 우리의 아바타의 모습은 결국 지금 나의 모습에 향후 미래에 되고 싶은 나를 믹스하여 나타나며 우리는 결국 우리가 설정한 아바타의 모습을 좇아간다고 한다. 결국 메타버스의 세계가 현실을 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성격마저도.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의 진짜 성격이란 게 무엇인가 싶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체조를 하고 오트밀요거트를  만들어 먹는 것도 나이지만, 이빨을 닦기 싫어서 자는 걸 늦추다가 도저히 화장실을 참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고 마는 사람도 나이다. 화가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며 흘려듣다가도, 어느 순간 꼭지가 돈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면서 조목조목 따져야만 숨통이 트일 것 같은 것도 나다.


투정을 부리는 걸 잔뜩 본 사람은 불평이 많은 편이라고 단정 지을 것이고, 걱정을 한껏 표현했던 날에는 걱정쟁이로 불릴 것이다. 이처럼 나의 모습이란 내가 어떤 모습을 중첩적으로 보였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다른 나를 하나의 개체로 인지한다면 다중인격이 아닐 테지만, 그 다른 나가 또 다른 하나의 개체로 각각 존재할 때는 굉장한 빨간불이겠지.


궁금증에 하나의 개체인 내 안에 얼마나 다양한 내가 존재할까 분석해 본다. 클래식에 박식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솔직히 그 음악이 그 음악 같고, “이 곡은 쇼팽의 녹턴 제8번 내림라장조이군요.”따위는 절대 맞출 수 없을 것 같다. 최신유행가를 능통하게 따라 부르고 싶지만, 최신음악자체를 듣지 않는 모순도 있다. 미니멀리즘에 빠져 최소한의 옷만 남겨두고서는 어제 바지 두 개를 결제한 내가 조금 멋쩍기도 하다. 파보면 파볼수록 매우 복잡한 인간이다. 모두 그렇겠지??


그래도 요즘 깨달은 건,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한다는 것과

비싼 레스토랑도 좋지만, 공짜인 햇볕을 더 사랑하며,

과자나 피자를 절제했을 때 묘한 희열감을 느끼면서도

하루쯤은 아주 제대로 망가지려고 하는 사람처럼 쓰레기처럼 지내기도 한다는 것.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돌려하는 법 없이 정면 그대로 마주칠 줄도 아는 내가 꽤 괜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물론 반대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잔뜩 뜯고 싶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메타버스의 아바타가 상용화가 되더라도 게으름뱅이인 나는 나의 업그레이드버전인 아바타는커녕 여전히 소파에 누워서 시원한 탄산수 한잔을 마시며, 테이블에 있는 리모컨을 가지러 가기 싫어서 누군가 내 눈앞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또한 빨간불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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