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같지 않을 때, 나는 꽃을 꽂는다

좋아하는 걸 하며 오늘을 버텨낸 이야기

by Tone on

일에 지쳐 감정이 점점 무뎌지고,

우울감에 사로잡혀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날들이었다.

내가 나 같지 않던 시간들


나를 잃어가는 기분,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조금씩 채워가자'라고 다짐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다짐의 하나였고,

이번엔 좋아하는 꽃으로 하루를 채워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양재 꽃시장에 갔다.

차가 막혀도 좋았고, 꽃시장 사장님들의 기에 눌려도 괜찮았다.

전문가가 아닌 나는 괜히 소심해지는 분위기였지만,

꽃 이름은 몰라도 자신감 있게 외친다.

"사장님, 이거랑 이거 하나씩 주세요:)"

조금 산 줄 알았는데, 어느새 양손 가득 꽃을 안고

조수석에도 한아름 꽃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에 멈출 때마다 옆에 있는 꽃들을 보며

괜히 혼자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꽃들을 하나하나 다듬었다.

거창한 도구는 없다.

주방 가위 하나 들고 꽃을 자르고, 다듬고, 꽂았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냥 행복했다.


내 방에 둘 꽃다발 하나 만들고,

주변에 선물할 작은 꽃다발도 몇 개 만들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꽃을 고르는 시간이 참 좋았다.

작은 식탁 위, 내 방 책상 위에 놓인 꽃들 덕분에

공간의 분위기, 그리고 나의 기분이 바뀌는 게 신기했다.

이건 거창한 취미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내가 기분 좋아지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는, 아주 사적인 방식이다.

한 송이, 한 송이

이리 꽂아보고 저리 옮겨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다시 채워가는 연습을 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나를 지켜냈다.


작은 빛 하나 켜듯, 오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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