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다.
신입사원 시절, 부서 워크숍 겸 단합회 때 동료들과 함께 교외로 나가 풋살 경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날, 신입사원다운 자세로 온몸에서 땀이 폭포처럼 쏟아지도록 뛰어다녔다.점수는 우리가 이겼지만, 진짜 시련은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슬쩍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았고, 또 누군가는 침묵 속에 방향제를 손에 뿌리며 나름의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러다 한 선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진짜 시원하게 땀 흘렸네…” 이게 칭찬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그 땀은 내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냈다는 증거였고, 내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는 신호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물론 주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암! 그렇고 말고.
나는 본래 땀이 많은 편이다. 여름이면 출근도 하기 전에 지하철 안에서 이미 셔츠가 등에 들러붙는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두꺼운 옷을 입고 사무실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등에 습기가 찬다. 그러고 나서 찬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나오면, 그 냉기는 꽤 뼈아프다. 하지만 나는 이 땀이 싫지 않다. 오히려 몸속에 얽혀 있던 감정과 피로가 땀과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찜질방에 자주 간다. 뜨거운 황토방 안에서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줄기를 느끼고 있으면, 어지럽던 마음도 차츰 정리된다. “어떻게 저렇게 땀을 많이 흘리지?” 라는 사람들의 시선도 이제는 그냥 웃어넘긴다. 그건 내 몸이 나를 위해 일하는 시간이다.
며칠 전, 대통령 선거일 아침. 이른 시간에 투표를 마치자마자 곧장 찜질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황토방으로 들어섰다. 실내 온도는 섭씨 56도. 바닥에 앉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피부를 감싸 안았다. 몇 분이 지나자 이마 위로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이 이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고, 허벅지까지 이르러 옷을 적셨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거웠지만, 묘하게도 그 열기 속에 잠긴 채 스스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견디기 힘든 열기에 몸이 반응하고, 숨이 가빠질수록 오히려 내면은 또렷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10여 분을 버티다가 문을 열고 산소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깊게 들이킨 첫 호흡.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며, 전신을 감싸던 열기를 씻어내듯 시원함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몸이 단순히 가벼워지는 것을 넘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끈적한 감정들, 복잡한 생각들이 한 겹씩 벗겨지며 조용히 가라앉았다. 마치 오래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고요하고도 선명한 감각이 마음을 채워갔다.
요즘 회사 일은 늘 벅차다. 경력이 쌓일수록 일은 단순한 책임을 넘어, 동료들과의 관계와 결과에 대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런 책임감은 종종 마음을 짓누르고, 무심코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땀을 흘리러 간다. 찜질방이든 등산이든, 숨이 차고 땀이 줄줄 흐르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든다. 거창한 변화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책임감에 짓눌릴수록 나 자신에게 작고 단단한 쉼을 허락하는 것. 땀을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처럼, 오늘을 지나고 나서야 찾아오는 그 평온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땀을 흘리러 간다. 내일을 견딜 수 있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