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비밀 by 아스가르 파르하디
* 스포일러 있습니다.
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 예전에 하몽하몽이라는 영화에서 풋풋한 연인을 연기했던 두 사람이, 세월이 흘러 다시 같은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이제는 주름도 깊어졌고, 눈빛도 훨씬 짙어졌다. 이번 영화에서 과거 연인이었다는 설정은, 관객이 두 사람을 진짜 연인이었던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비에르 바르뎀을 보면 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 단발머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하몽하몽 시절의 그는 참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 시절, 부모님 몰래 19금 생각을 하며 하몽하몽을 보던 청소년의 나도 늙었고, 그도 늙었다.
이번 영화에서 페넬로페 크루즈는 라우라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딸 일레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라우라, 그리고 그곳에는 파코, 그러니까 하비에르 바르뎀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감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마주쳤을 때 특유의 공기랄까. 그러던 중 일레나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따라가던 중 둘 사이에 감춰졌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알고 보니 일레나는 파코의 딸이었다. 라우라는 오랜 시간 이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고, 파코는 결국 자신이 땀 흘려 일군 포도밭을 팔아 아이를 구한다. 그리고 묵묵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특별한 미사여구 없이 끝난 이 장면을 보고 나서 마음이 좀 울적했다.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다 내어주고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 포도밭까지 팔고, 남은 건 허탈한 얼굴 하나. 참 싫은 결말이었다. 불행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늘 그렇다. 현실은 이미 충분히 힘든데, 왜 영화까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행복한 이야기는 뻔하고, 불행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아마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나 소설이 불행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일테다.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서문처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강하게 남은 건 결국 ‘비밀’이라는 단어였다. ‘누구나 아는 비밀’이라는 제목부터 참 묘하다. 비밀인데, 모두 안다니.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어떤 이는 그걸 이용하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모른 척하고. 그런데 결국 손해를 보는 건 그 비밀의 주체인 사람이다. 이번 영화가 딱 그렇다. 애초에 그 비밀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허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했다.
부끄럽고 두려워도, 말해야 할 땐 말하고, 숨기지 말고 살자고. 솔직한 게 결국엔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