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병 걸리고 난 후
며칠 전부터 목이 칼칼하더니 기침까지 나기 시작했다. 감기겠거니 했는데, 콧물 나고 머리 아프고 몸까지 쑤시니까 휴일 이틀이 그냥 망가졌다. 왜 이러나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밤마다 에어컨 세게 틀어놓고 잤던 게 문제였다. 그땐 시원해서 좋았지. 근데 결국 이렇게 탈이 날 줄은 몰랐다. 말 그대로 ‘한순간의 시원함’이 이렇게 오래 가는 고생으로 돌아올 줄이야.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극단적인 선택지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인간관계가 너무 피곤하면 그냥 다 끊어버리고 싶고, 일이 버겁다 싶으면 때려치우고 어딘가 멀리 가고 싶어진다. 최근엔 진지하게 시골 내려가서 시골 일상 브이로그 찍어볼까, 아니면 발리에 가서 몇 달 살아볼까, 그런 상상을 자주 했다. 현실 도피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불편함을 단번에 없애버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근데 냉방병처럼, 그렇게 ‘한 방’에 해결하려다 보면 결국 더 아파진다. 잠깐은 편하지만, 그 대가는 길고 묵직하게 찾아온다.
삶도 그런 것 같다. 버겁고 지칠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뭐 하나 확 바꿔서 다 나아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차라리 조금씩 조절해보는 게 낫다. 관계가 힘들면 당장 끊기보단 거리를 좀 둬보는 거고, 일이 너무 버거우면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 것. 내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마주해보는 게 결국 가장 오래 가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도망치지 않고도 살 수 있구나’ 싶은 날이 온다.
냉방병 덕분에 또 한 번 배운다. 당장 시원한 것보다, 오래 괜찮은 게 더 중요하다는 거. 너무 더우면 에어컨은 켜야겠지만, 조금씩. 적당히. 그래야 안 아프다. 삶도 딱 그만큼씩만 바꿔가면 된다. 무리하지 말고, 피하지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