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구이와 오트밀
나는 생선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린내가 싫어서 어릴 적부터 생선이 밥상에 오르면 젓가락이 멈췄다. 장어구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비싼 음식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나랑은 안 맞아’라며 선을 그어버렸다. 주변에서 몇 번 권한 적도 있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런데 인생이란 게 그렇다. 피해 다니던 것이 슬며시 다가와 어느 순간 반전을 일으킨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 야유회에서 상사 한 분이 장어 한 점을 상추에 싸서 정성스럽게 건네셨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 일단 먹고 보자는 심정으로 한입… 세상에, 이게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눈이 번쩍 뜨였다. 어쩐지 억울했다. 그동안 내가 놓친 이 맛의 세월이. 그날 이후, 장어구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에 당당히 올라 있다.
비슷한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후, 건강한 식단을 알아보다가 오트밀이라는 녀석을 마주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마음이 가지 않았다. 사진 속 오트밀은 어딘가 심심하고 맛없어 보였다. ‘이건 사료잖아’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그래도 몸을 생각하다 보니 한 번쯤은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동료가 만들어 온 오트밀을 한 입 맛보게 됐다. 간장, 계란, 참치, 참기름, 청양고추를 넣은 오트밀은 나의 소울푸드인 간장계란밥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았다. 고소하고 부드러워서 ‘이거, 제법인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편견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이 비단 음식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해 보지 않았던 취미에 도전하는 일, 배우고 싶은 분야에 발을 들이는 일… 그런 모든 시작 앞에서 나는 언제나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말로 물러섰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함 속에서 편안함을 찾는 법을 먼저 배운 나는 낯선 것을 두려워했고, 결국 편견이라는 이름의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 그러니 새로운 것들은 늘 내 바깥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가능성의 반쪽을 스스로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올해는 조금 더 재미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또 익숙한 하루들 속에 묻혀 있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가네, 파노라마처럼’이라는 노랫말이 문득 마음에 꽂혔다. 진짜 그렇다. 짧은 인생인데, 사소한 편견 때문에 놓치는 게 많다. 맛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일상 속 작은 도전들도 그렇다. 그러니 이젠 조금은 더 가볍게, “안 해봤으면 말을 말자”는 마음으로 살아보려 한다. 그 시작이 오트밀 한 숟가락이었다면, 다음은 또 어떤 새로운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