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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beautiful"을 믿어보기로 했다

by 도시남자 수식씨

TV를 켜놓고 멍하니 화면을 보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온 한 여행자가 거리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 “Life is beautiful.” 너무도 단순하고 짧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 며칠째 떠나질 않는다. 무슨 큰 감동이나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말하는 표정, 말투, 그리고 그 말에 담긴 여유와 진심 같은 것이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그 사람은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가족도 건강하고, 일도 하고, 친구도 있고, 가끔은 여행도 다닌다고. 그러면서 삶이 이렇게 좋은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웃어 보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좋은 사람들 곁에 있고, 내가 좋아했던 분야를 공부했고, 여행 가고 싶은 곳 갈 정도의 적당한 경제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자주 지치고, 마음이 허전한 걸까. 뭔가 부족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흐릿해질 때. 처음에는 그런 감정이 나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내가 게으른가, 감사할 줄 모르나, 그런 자책도 해봤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잘 사는 중’에도 충분히 지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꼭 큰 문제가 있어야만 힘든 건 아니라는 걸, 나이를 먹어가며 서서히 깨닫는다.


아마 마음속 어딘가에 늘 충돌하는 두 가지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야’라는 안도감과 ‘아직도 뭔가 부족해’라는 막연한 갈증. 우리는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때로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하고, 때로는 이유 없는 불안에 휘청인다. 그래서 요즘은 꼭 이유를 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힘들 땐 그냥 힘든 거고,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을 땐 그런 날도 있는 거다. 그게 꼭 잘못된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들었던 “Life is beautiful”이라는 말은 자꾸 생각난다. 정말 삶이 아름다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서일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마음속에 조용히 걸어두면, 이상하게도 오늘이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을까. 내 삶을 가볍게 꺼내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오늘 하루를 그 말과 함께 보내보기로 한다. 삶이 정말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한 번 믿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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