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2026년을 맞이하는 비장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음먹기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배가 부르지는 않는 법이다. 공자, 맹자를 논하는 정신 수양도 좋지만 40대 중년에게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제격이다. 추상적인 다짐은 접어두고, 올 연말 기필코 수확하고 싶은 구체적인 열매 세 가지를 기록해 두려 한다. 남들 보기에 대단한 성취는 아닐지라도, 내 인생의 텃밭에서는 꽤 공을 들여야 하는 작물들이다.
첫 번째 열매는 다소 뜬금없지만 ‘유튜브 채널’이다. 거창한 수익 창출이나 실버 버튼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아직 구상 중이지만 염두에 둔 주제가 좀 묘하다. 40대 독거 중년의 칙칙한 생존기가 아니라, 20대 감성이 물씬 풍기는 국내 여행 브이로그를 지향한다. 화면 가득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 녹아든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예쁘게 담고 싶다. 벤치에서 쉬는 노부부, 꽃이 만발한 숲속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이 감성적인 앵글 뒤에 배 나온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는 건 철저한 영업비밀이다. 집에 그럴싸한 장비는 없다. DSLR 같은 건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스마트폰 하나 주머니에 꽂고 당장 이번 주말부터 밖으로 나갈 참이다. 구독자가 10명이 안 된들 어떠한가. 방구석을 벗어나 세상 속 예쁜 풍경을 기록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두 번째는 지긋지긋한 숫자 싸움, 바로 ‘체중 앞자리 7’을 탈환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내 몸무게는 8과 9 사이에서 널뛰기를 했다.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주식 차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몇 년 전, 독하게 마음먹고 70kg대에 진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남은 건 멋진 옷태가 아니라 휑한 정수리와 면역력 저하로 인한 알레르기뿐이었다. 득보다 실이 많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머리카락을 사수하면서 건강하게 살을 빼야 한다. 길게 보고 갈 것이다. 당장 오늘 점심부터 팀원들에게 "오늘은 샐러드 맛집으로 가자"고 선포할 생각이다. 오후 3~4시쯤 허기가 몰려오겠지만, 무릎 관절과 혈관 건강을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할 대가다. 풀만 먹고사는 코끼리도 몸집이 크다는 사실은 잠시 잊기로 한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하고 간절한 열매, 바로 ‘결혼’이다. 솔직히 앞의 두 가지는 실패해도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이것만은 절박하다. 20~30대 때는 자유가 좋았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주말이 달콤했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 넘게 혼자 살아보니 알겠다. 자유는 고독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제는 적막강산인 집보다 잔소리가 들리는 시끌벅적한 집이 그립다. 내가 1순위이고, 나를 1순위로 여겨줄 가족이 필요하다. 밥 먹었냐는 물음이 기계적인 안부가 아니라 애정이 되는 관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얼굴과 몸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으니 마음만 좀 더 예쁘게 가꾸면 되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내면의 깊이를 더해 누군가와 발맞춰 걷고 싶다.
계획을 적고 보니 '유튜브 하는 날씬한 유부남'이 되겠다는 소리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늘 진흙탕 싸움일 게 뻔하다. 샐러드 먹고 돌아서서 라면 물을 올릴 수도 있고, 촬영하러 나갔다가 벤치에 앉아 졸다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늙어가는 것보다는 발버둥 치는 아저씨가 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2026년 12월, 이 글을 다시 열어봤을 때 적어도 하나는 건져 올렸기를 바랄 뿐이다. 셋 다 못 이뤘다면, 뭐 내후년에 다시 쓰면 된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P.S. 참, 하나 더 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이 공간에 글을 꾸준히 쓰는 것. 이것만큼은 꼭 지키려 한다. 작심삼일도 100번 하면 1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