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나의 힘

by 도시남자 수식씨

우리 부서에는 김 수석이라는 동료가 있다. 그와 밥을 먹으면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분명 같은 돈을 냈는데 콩나물국밥 속 콩나물은 유독 푸짐하고, 단골 카페에선 "방금 구운 빵"이라며 서비스가 슬쩍 나온다. 비결을 물으면 그저 "자주 가서 그렇다"며 싱겁게 답하지만, 내가 지켜본 진짜 이유는 달랐다.


그는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안녕하세요!"라며 밝게 인사하고, 반찬을 더 청할 때도 "오늘 반찬이 참 맛있네요" 같은 기분 좋은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누린 넉넉한 인심은 김 수석이 건넨 '말 한마디'에 대한 보답이었던 셈이다. 지난 40여 년간 '돈 내는 손님' 유세만 떤 건 아닌지 부끄러워져 나도 그를 흉내 내보기로 했다. 그런데 친절의 진짜 효능은 평온한 일상이 아닌, 치과라는 위기 상황에서 발휘됐다.


나는 치과 겁쟁이다. 하필 신경치료 중 마취 주사가 들어오는 순간 "으아아악!" 하며 영업 방해 수준의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간호사 선생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고,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라는 말투엔 짜증이 묻어났다. 치료 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김 수석을 떠올리며 진심을 다해 사과를 건넸다.


"제가 겁이 많아서 선생님을 너무 고생시켰네요. 죄송합니다. 덕분에 안 아프게 잘 끝났습니다."


그러자 사무적이던 선생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지며, 마취가 풀리면 먹을 약까지 꼼꼼히 챙겨주었다. 차가운 공기가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진짜 기적은 며칠 뒤에 일어났다. 점심에 김밥을 먹다가 임시 치아가 빠져버린 것이다. 일요일이라 참고 다음 날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갔다. 대기실은 만원이었지만 데스크에 있던 그 선생님이 나를 알아봤다. "예약도 없이 죄송합니다"라며 쭈뼛거리는 내게 선생님은 윙크하듯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원장님 식사하시기 전에 바로 봐 드릴게요."


예약 환자들 틈바구니에서 기적 같은 '프리패스'가 열린 것이다. 흔히 친절을 도덕이나 배려의 영역이라 여기지만, 직접 겪어보니 40대의 친절은 쏠쏠한 '생존 전략'이자 '실리'였다. 상대를 존중하면 그 마음은 어떤 형태로든 혜택이 되어 돌아온다. 거창한 세계 평화가 아니라, 내 밥상의 평화와 치아의 안녕을 위해 나는 앞으로도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인사하는 사람에게 순번 하나 당겨주는 게 사람 사는 정 아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2026년, 맺고 싶은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