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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이 아빠를 반겨주는 방법

by labelbyme

퇴근하고 집에 가면 거의 항상 딸이 '왔어'라는 말로 나를 반겨준다. 왔어라는 단어 자체로는 어디에도 반가움의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어가 아니라 딸의 표정과 나에게 다가오는 몸짓을 '왔어'라는 단어와 결합시키면 이보다 더 나를 반겨주는 표현은 없다. '왔어'라는 단어로 나는 집에 왔음을 그리고 왜 집에 와야 하는 지를 확인한다.


컴퓨터에서 서류를 제출하고 완료라는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왔어'라는 확인 단어를 듣고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간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딸은 본격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방으로 온다. 여기서 듣는 내용은 많은 경우에 전화로 들었던 말이다. 딸은 학교가 끝나고 일주일에 3번 정도 하교할 때 나에게 전화를 한다. 하교하는 길에 사람이 없어서 무섭기도 하고, 걷는 10분의 시간이 지겹기 때문이다. 나는 출근할 때 버스를 타는데 정류장이 딸 학교와 가까이 있어서 딸과 같이 출근한다. 아침에는 주로 그날 학교에서 일어날 일을 듣기 때문에 하교할 때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출근할 때 들었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은 내용을 한 번 더 말해주는 딸과 같은 내용을 다시 열심히 듣는 아빠가 있기에 가능한 대화다. 옷을 갈아입는 것을 멈출 수는 없지만 딸이 해주는 이야기에 리듬을 맞추어서 잠시 윗옷 벗기를 멈출 때도 있고, 옷을 옷걸이에 걸지 않고 손에 쥐면서 딸이 하는 말을 잘 듣는다. 대화라고 하기에는 딸이 하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나 또한 몸짓과 대답으로 내가 열심히 듣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다 누가 불러서 가야 할 용무가 있는 사람처럼 딸은 갑자기 자기 방으로 사라진다.


이 대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딸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다. 나는 중학생 딸의 환대가 매번 기적처럼 느껴진다. 어떤 누군가는 딸의 환대를 한 번도 못 받아본 사람이 있을 텐데 나는 매일 먹는 식사처럼 계속 환영을 받는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기적이 그래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을 알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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