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고양이 모래 한톨, 마음 속 티끌 한 톨

by 주니준

<공주와 완도콩>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어렸을 때, 읽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왕자가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했습니다. 단 그냥 공주가 아니라, 진정한 공주 중의 공주를요. 왕자는 수많은 공자를 만나보았지만 진정한 공주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찾지 못해 슬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우가 치는 밤이었습니다. 왕자의 성에 한 공주가 찾아왔습니다. 몰골은 비바람에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는 자신이 '진짜' 공주라며 재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왕자는 여자를 시험하기 위해 재워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묵을 방 침대 위에 '완두콩' 한 알을 올려 놓았습니다. '완두콩' 한 알 위애 매트리스 12개, 이불 12겹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에게 잘 잤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침대에 뭔가 딱딱한 게 있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왕자 가족은 그녀를 진정한 공주라고 여겼고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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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서미 스트리트의 그림책 삽화, 출처: https://namu.wiki/w/%EA%B3%B5%EC%A3%BC%EC%99%80%20%EC%99%84%EB%91%90%EC%BD%A9>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이 이야기의 한스 크르시트인과 안데르센이 쓴 동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땐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요 며칠 고양미 모래 한톨 때문에 잠을 못 자다보니, 잊고 있던 이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집에는 '시루(떡)'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성격은 굉장히 소심하고 세상 모든 것에 조심스러운 녀석입니다. 그럼에도 화장실에서는 어찌 그리 거침이 없는지요. 그 녀석이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모래를 헤집는 뒷발질 소리는 자다가도 깰만큼 굉장히 우렁찹니다. 또한 볼일 보고 나오면 꼭 네 발에 모래를 가득 묻히고 나옵니다. 화장실 앞에 매트를 깔았지만 소용없는지는 오래입니다. 그러다 보니 녀석이 돌아다는 흔적마다 모래가 떨어져 있습니다. 침대에도 어김이 없습니다. 제가 출근하고 나면 녀석은 자기 잠자리 대신 제 침대를 가끔 독차지하는 모양입니다. 밤에 잠을 잘려고 보니, 뭐가 까끌한 게 자꾸 걸리적 거려 보니 작은 고양이 모래 몇 알입니다. 그 작은 모래알때문에 며칠 잠을 못잤습니다. 이불을 털고 오면 다음 날 또 작은 모래알이 또 몇 개 있습니다. 티끌 하나에 잠이 편치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작은 것에도 예민한 공주는 아닙니다. ^^


다만, 작은 모래알이 제 침대에만 있겠습니까. 제 마음에도 누군가의 마음에도 까끌거리는 작은 모래 한 알이 알게 모르게 툭 던져진 시간들이 있겠지요. 작은 모래 한 알에도 몸이 이렇게 '개개풀린데', 마음에 툭 던져진 모래 한 알은 어떨까요? 마음에 던져진 모래 한 알을 쓸어내는 방법은 뭘까요?


어쩌면 그 방법은 모래를 손끝으로 꺼내려 애쓰는 대신 한동안 그대로 품고 있는 거 아닐까요. 너무 급히 상처를 쓸어내려 하면 그 모래알은 날카로운 결을 세우고 더 깊이, 더 안쪽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가만히 두는 겁니다. 당신의 숨결과 심장 박동이 부드럽게 그 둘레를 쓰다듬도록 천천히 기다리는 거지요. 그러면 언젠가 바람이 불거나 물결이 흘러와 그 모래를 둥글게 깎아내릴 겁니다. 날카로운 상처는 작은 둥근 진주처럼, 여전히 마음 안에 머물지만 이젠 아프지 않게 될 겁니다. 그때 알게 될 겁니다. 상처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다만 더 부드럽게 빛난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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