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의 성장과 사랑, <나를 보내지 마>
복제인간을 다룬 소설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무척 죄송하나, 나는 책이 어떤 내용일지 너무 뻔히 예상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간 내가 봐왔던 복제인간을 다룬 창작물들은 대개가 스릴러 혹은 액션물이었고, 무척이나 직접적으로 복제인간의 권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것을 극의 중심 소재로 이끌어갔으니까. 스스로가 복제인간임을 모르고 있다 이를 뒤늦게 자각하고 탈출을 시도한다던지, 복제인간이란 자각을 갖고 살지만 뒤늦게야 인간성(humanity)에 눈을 뜨고 저항을 시작한다던가 하는. 책을 읽으며 예상은 처참히 무너졌고,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그런 전형적 플롯들이 얼마나 게으른 형식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그런 소설이다.
소설은 간병사인 ‘캐시’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그녀가 기숙학교 헤일셤에서 지내던 시기의 기억, 헤일셤을 떠나 코티지라는 다른 시설로 옮겨갔을 시절의 기억, 그리고 다시 성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의 일들. 마치 친구에게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전해 듣듯,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어느샌가 헤일셤에 다녔던 것만 같은, 그리고 그 기억들을 들려주는 캐시와 오래 안 친구 같다는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유년기 시절 누구나 경험했던 것 같은 유치한 투쟁의 기억, 사춘기에 있었던 자의식 과잉과 사랑.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은밀하고 관음적인 방식이 아니라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직접 전해 듣는 삶의 궤적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기증자로서의 삶에 이르면, 나는 어느새 캐시와 동화되어 같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주제를 다루는 소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이문열의 <우리 안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이 정형화되고 상징화된 평면적인 인물들이 그네들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이시구로는 주인공들을 무척이나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내가 전해 듣고 엿보았던 여자들 특유의 친분-권력관계라던가, 개개인의 욕망과 성장, 그리고 실수와 용서들. 소유욕과 질투, 허세와 경멸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그네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무척이나 재밌다. 막장드라마 같은 말초적 자극은 없지만 인물의 입체성에 비례하는 사건들의 개연성과 구체성은 성장 소설로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수준 높은 작품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 이 소설의 멋진 점이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배웠을 때로 기억한다. 아니, 어쩌면 <장마>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우는 소설들은 화자의 나이로 인해 묘사의 한계 등이 존재하지만, 어린아이의 시각을 통해 보는 사건들은 무척이나 낯설고 순수함으로 인해 더욱 비극성이 부각된다던.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면서도 나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 자체는 캐시의 유년기로부터 성인까지 이어지는 전형적 성장소설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외부 사회와 유리된 헤일셤의 그들은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순수한 존재니까. 그래서 마치 ‘옥희’가 그러하듯, 그들의 시선으로 해석한 사회의 진실이 점차 드러나며 ‘풍금’은 단순히 악기가 아니게 된다. 어머니는 왜 밤늦도록 구슬프게 풍금을 탔던가.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감정을 무척이나 세밀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즐거워하다, 그들의 성장이 무엇을 예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런 환경에서 지냈어야 했는지를 파악하다 보면 무척이나 서글퍼진다. 작중에서 캐시가 듣는 주디 브릿지워터의 「송즈 애프터 다크」와 같이 음울하고 매력적인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구태여 눈앞에 들이밀고 윽박지르지 않아도 이 작품이 왜 복제인간을 소재로 다루는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시구로는 소설 전체를 통해 이를 무척이나 잘 보여주니까. 말해주지 않아 더 와 닿는, 차분하게 잘 배분된 복제인간들의 슬픈 성장기를 전해 듣고 싶은 분은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개인적 별점은 ★★★★☆. 노벨문학상 받은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