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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Aug 26. 2018

'또라이' 검사의 검찰생활 적응기

검사가 쓴 검사의 삶, <검사내전>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라 한다. <타짜>에서부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해, <도둑들>로 천만 관객을 찍으며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사람이니 한국에서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쏟아내는 독특한 대사들이 너무 즐겁다. 이제는 일종의 밈이 된 <타짜>의 ‘예림이 그 패 봐봐’ 씬은 물론이고, <도둑들>에서 툭툭 던져지는 대사들도 가히 예술이다. 씹던껌 역할을 맡은 김해숙 씨가 본인도 이제 늙었다며 던졌던 “국산차 이 정도면 오래 탔어”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김웅 검사가 쓴 <검사내전>을 읽다 보면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입담이 정말 보통이 아니시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법조인들의 글은 대개 딱딱했다. 평소에 보고 쓰는 글들이 죄다 그런 글들인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론 ‘무게잡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글도 같이 뻣뻣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서 좀 벗어났다는 평을 듣는 문유석 판사의 글도 나한텐 너무 지루했다. <판사유감>은 그래도 읽을 만했었지만, <개인주의자 선언>은 읽다가 지쳐 그냥 덮어버렸다. 점잖은 어조로 설법을 하는 책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잖은가. 아, 그런데 김웅 검사의 글은 달랐다. 검찰 내에서 ‘또라이’ 소리를 듣는다는 그답게, 글도 정말 거침이 없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예전에 학교폭력 관련 회의에서 겪었던 일이다. 소년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는 판사가 갑자기 ‘이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이 있느냐’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은 재판을 하고 나서 소년범들을 꼭 안아준다고 했다. 꽤나 감동적인 연설이었고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자는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회의는 끝났다. 추악하고 황량했다.

 (중략)

 그 판사의 포옹이 만약 가해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건 아마 무겁고 힘든 수감 생활이 끝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포옹이라는 작은 호의로 갱생시켰다고 착각하는 것은 부처님을 모신 수레를 끄는 당나귀와 같은 생각이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신랄한 태도로 그가 겪은 검사생활들을 풀어내는데, 군데군데 박힌 그의 찰진 비유들이 너무나 적절해 읽다가 몇 번이나 웃음을 터트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불안과 번뇌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늙은 사기꾼 할머니가 무슨 욕심이 있겠냐는 것은 착각이라며, 사기꾼에게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어머니를 인용해 이렇게 표현하잖은가. “헌 가마니에 더 들어간다.”라고. 국가 규제를 통해 진입장벽을 만드는 이들을 두고는 “다리가 생기면 뱃사공은 실직자가 된다.”라고 하며, 변호사 수가 늘어난다고 한들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의 비용이 떨어지지는 않는단 것을 “수해가 나면 가장 귀한 것이 먹는 물”이라고 일갈한다. 인용한 것들은 일부고, 책 전반적으로 이런 말들이 마구 쏟아지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원래도 글빨을 좀 세우는 분이신 게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챕터는 본인이 검사 생활을 하며 겪었던 각종 사기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내용이며, 두 번째 챕터는 그 외의 여러 사건들을 본인의 감상을 담아 담담하고 재밌게 서술한 파트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두 번째 챕터에 실린 「그들이 고소 왕이 된 까닭」이다. 그 이후는 개별 사건을 넘어 검사로서의 삶을 얘기하는 세 번째 챕터와 그가 생각하는 법에 대한 생각을 담은 네 번째 챕터가 이어진다. 갈수록 진중해지고 딱딱해지기는 하나 가벼운 교양서의 범위를 넘어서진 않고, 훈계조도 아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가볍게 쓰는 만큼 약간 넋두리 같은 부분들도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네 번째 챕터에 있는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글은 구국의 심정으로 꾹꾹 눌러쓴 정치혐오 글인데, 술자리에서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게 아니면 굳이 듣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준이다. 차라리 얼른 취하게 만들어서 대리 불러 태워 보내듯, 책장을 휙휙 넘겨버렸다. 마지막 부분의 이런 흠결이 있어도 참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누구든 무척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집이라는 평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개인적 별점은 ★★★★.



아, 참고로. 책을 보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형사처벌은 진통제와 같다. 자꾸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점점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사 먹는, 혹은 가벼운 질환으로 처방받아서 먹는 진통제들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큰 외과수술을 하거나 암환자들이 겪는 극심한 암성 통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먹는 마약성 진통제만 내성이 생긴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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