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보다 더 끔찍한 사와타리 가문의 비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으로 영화화되면서 영화가 훨씬 더 유명해졌지만, 소설 <덤불속>은 무척이나 재밌는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분명히 같은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있음에도 인물들의 발언에 따라 사실관계와 서사가 바뀌며, 그를 나름대로 짜 맞추어 종합해봐도 명확한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는 힘든 미스터리 걸작. 온다 리쿠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작가 본인이 밝혔듯, 소설 <덤불속>에 대한 개인적 애정과 영화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를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낸 미스터리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이렇다. 사와타리 가문이라는 몰락해가는 재벌가는 매년 호텔을 통째로 빌려 성대한 규모의 연회를 여는데, 호스트인 세 자매는 매년 연회장에서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어린 시절 나비 떼가 시체를 둘러싸고 앉아 체액을 빨아먹는 광경을 목격했던 일, 호텔 로비에 설치된 거대한 괘종시계에 얽힌 끔찍한 비밀 등 듣는 사람이 섬뜩해질 정도의 얘기들을 늘어놓는 것이 그 연회의 핵심이다. 문제는 그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적당한 수준의 사실을 섞은 허구라는 것. 작가는 연회에 참석한 핵심 인물들을 하나씩 골라가며, 그네들의 관점에서 본 사와타리 가문의 진실과 그녀들의 비밀을 조금씩 드러내 간다.
소설의 제목인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가 쓴 곡으로, 한 테마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형태의 음악이다. 그 이름을 빌린 것에 걸맞게, 저자가 그려내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 본 사와타리 가문의 진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각 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들이 <덤불속>의 증언처럼 서로 상충하고, 일치되며 말 그대로 ‘변주’가 일어난다. A가 추측한 B와 C의 관계는 B의 관점에서 재차 정의되며, 이는 C의 관점에서 다시 부정되면서 제3의 사실이 드러나 다시 D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그런 끝없는 미스터리적 변주와 해석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부족한 점이 없지는 않다. 작가의 전작 중 하나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도 드러났던 문제이지만, 그의 소설 마무리는 미스터리적 여운이 남는 방식이라기 보단 어정쩡하고 급한 끝내기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 역시도 그런 문제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개별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각자의 해석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별도의 시간 축을 만들어 그네들 해석을 다시금 종합하는 방식을 택했어야만 했을까? 연재소설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런 마무리 부분이 필요하지 않았을 까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부분은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장점이 훨씬 큰 작품이라 읽는 내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음.
개인적인 베스트는 류스케의 시점에서 진행된 제 3 변주. 소설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막장으로 치달아 임팩트가 줄어들긴 했지만, 나는 그가 숨기고 있는 비밀과 광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 별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