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여느 때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재밌는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하면서, 암살 위험에 대해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자로서 암살 위험을 겪는 것은 그리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권력이 독재자 한 명에게 집중된 형태의 체제는 그 사람의 암살로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취약성이 있는데, 독재자의 반대자들도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거든요.
역사상 가장 악독한 독재자 중 하나였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나치 독일 내부의 적들은 물론이고, 나치 독일과 전쟁을 벌이던 유럽 각국의 사람들이 모두 히틀러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 모든 암살 시도를 피했던 걸까요? 그 주제를 다룬 것이, 다큐멘터리 시리즈 <히틀러의 호위대>입니다.
다큐멘터리는 히틀러가 암살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습니다.
첫 번째는 히틀러 개인을 경호하기 위한 엄청난 수준의 경호원 부대입니다.
히틀러를 초근접 호위하는 8명의 핵심 경호원에 더해, 히틀러 보호를 위한 SS 무장친위대(Leibstandarte SS) 수백 명, 히틀러와 함께 무장 폭동을 일으켰던 나치 돌격대 SA, 독일의 총리가 된 이후에 창설한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Geheime Staatspolizei, 줄여서 게슈타포) 인력 수천 명이 상시적으로 히틀러를 암살 위협에서 보호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SS 총통 경호 여단이 여기에 합류했으니, 히틀러 한 명을 지키기 위해 최소 수 천명에서 최대 만 명 단위의 사람들이 움직인 셈입니다.
물론 단순히 인원이 많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그 인원 중에 외부에서 들어온 첩자가 끼어든다거나, 혹시나 변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많은 인원도 있으나마나 한 것이겠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치 정권의 인종주의가 동원됐습니다.
SS 친위대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나치 독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아리아인’의 조건에 맞게 SS 친위대원들은 180cm 이상의 키에, 몸에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증명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년 위 조상까지의 혈통을 검증받아 순수한 아리아인임을 증빙하지 못하면 가입 자체가 불가능했었습니다. SS 장교의 경우는 더욱 철저하게, 거의 200년 가까운 시기의 조상들까지 검증을 받아야 했죠.
이렇게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 히틀러의 주위에 인의 장벽을 형성함으로써, 개인 차원의 우발적 암살 시도의 대부분은 저지되었습니다. SS친위대가 히틀러의 동선을 미리 점검하여 위험이 없는지 확인했고, 게슈타포가 암살 음모와 위험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항시 진행했으며, 중화기를 소지한 핵심 경호원이 항상 히틀러를 따라다니는 상황에서 우발적인 암살은 거의 불가능했죠. 히틀러는 계획된 암살 또한 막기 위해, 한 가지 조치를 더 덧붙입니다.
히틀러가 암살당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히틀러의 즉흥적인 동선 변경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본인이 이동할 목적지를 마구잡이로 바꿔 댔습니다. 며칠 전부터 기획된 행사에 불참하기로 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A라는 도시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출발 당일에 갑자기 B라는 도시로 바꾸는 등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해댔습니다.
거기다 이동 방식마저 즉흥적으로 바꾸기 일쑤였습니다. 히틀러가 선택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전용 차량, 전용 기차, 전용 비행기의 세 가지 정도가 있었는데 이 셋 중 어떤 수단을 이용할지는 히틀러 본인밖에 몰랐습니다. 심지어는 첩자들을 속이기 위해 빈 비행기를 운항시키거나, 빈 기차를 이동시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항공 일정이 꼬이고, 기차 운행 일정이 꼬여서 부수적 피해들이 발생했지만 총통의 안전이 최우선이었죠.
우발적인 개인 차원의 암살이 아니라면, 암살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됩니다. 히틀러의 이동 일정을 알기 위해서는 내부 정보원을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이동하는 장소에서 어떤 경호를 받는지도 역시 내부 정보원을 통해 빼내야 하며, 어떤 이동 수단을 이용할지를 알아야 암살자들이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수단을 이용할지는커녕, 어떤 곳으로 이동할지까지 무작위로 결정을 해버리니 암살 계획의 수립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같은 루트로 이동하던 나치 고위 간부 하나가 매복해있던 암살범들에게 폭탄 투척을 당해 사망했던 것을 보면 히틀러 입장에선 무척 합리적 결정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사실 암살은 밖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히틀러는 나치 독일 내에서의 권력 투쟁이 자신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무척이나 독특한 시스템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됩니다. 히틀러 본인이 부하들 간의 권력 투쟁을 부추기는 것이었죠.
세 번째는 나치 독일 간부들 사이의 미묘한 권력관계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의 내용에서 보듯, 히틀러는 엄청난 수의 경호원 부대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초근접 핵심 경호원 8명, SS 친위대, SA 돌격대, 비밀경찰 게슈타포 등등. 그런데 웃긴 건, 이 모든 개별 경호 집단의 수장이 모두 독립적인 간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핵심 경호원의 수장은 히틀러의 초기 혁명동지 중 하나가 맡고 있었고, SS 무장친위대는 명목상으로는 SS 소속이나 제프 디트리히가 히틀러에게 직접 명령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SA 돌격대는 히틀러의 초기 혁명동지였던 에른스트 룀의 지위 하에 있었고, 비밀경찰 게슈타포는 SS 전체의 책임자이자 나치 독일의 권력서열 3위였던 하인리히 힘러 아래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모든 집단이 나치 독일의 총통이던 히틀러를 독점적으로 경호함으로써, 나치 독일 내에서의 권력을 획득하길 도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각자 총통 경호를 위한 충성경쟁을 벌였지, 그 총끝을 총통인 히틀러에게 향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 그런 시도를 했다면 다른 경쟁 집단이 이를 발견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했을 거니까요.
이런 세 가지 요소를 통해 히틀러는 본인에 대한 암살을 피해왔지만, 그런 그도 한 가지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2차 대전 중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경호 방식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연합국이 히틀러에 대한 암살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아서였다는 점을요.
처음에는 연합군도 히틀러를 암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했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수괴가 사망하면 나치 독일이 구심점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연합군 참모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말렸습니다. 히틀러의 군사적 판단력이 너무나도 무능해서, 그를 살려두는 것이 전쟁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간파했거든요.
물론 최종적으로는 암살 기도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을 하기 전까지 히틀러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 아닐까요?
다큐 <히틀러의 호위대>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