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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으로 Jul 27. 2024

아들이 사온 ‘이것’덕분에 폭발한 연기력

 오늘은 간만에 주방을 정리할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엄마 잃은 나를 다독이느라 주방이고 집이고 영 신경을 쓰지 못했다. 맘먹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장 맨 위 칸을 열었다. 열자마자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예쁘고 올망졸망 사랑스런 소주잔 2개.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글로벌 어학연수'라고 두 달 동안 캐나다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현지 초등학교를 다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6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갔는데 도에서 반절 지원을 받았다. 아주 핫한 프로그램이어서 각 영어학원에서는 이를 위한 준비 수업이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아들이 합격했다는 소식에 우리 부부는 복권 당첨이라도 된 듯 기뻐 날뛰었으며 정말 좋아서 난리도 아니었다.  홈스테이 할 집의 부모들과 온라인으로 서로 인사를 하고 구글 앱으로 그 집 외부 모습을 확인하는 등 출발 한 달 전부터 모든 세부사항을 체크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아들과 두 달 동안 떨어질 마음의 준비부터 생활 속 작은 준비물까지 철저하게 마쳤다.


 아들은 어학연수 첫 일주일을 미국의 아이비스쿨을 탐방하며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잘 지냈다. 전화해서는 흥분한  목소리로 그곳의 세세한 설명을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탐방을 마치고 캐나다홈스테이 집에 도착한  첫날부터 정말 매일매일 울어댔다. 전화 통화를 하면 매일 훌쩍거려 말을 잇지 못했으며 그런 아들의 모습에 나 또한 눈물바람 멈출 날이 없었다.


 외동인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이 망망대해를 혼자 항해하듯 외롭고 슬펐다. 그런데  아들이 통화할 때마다 울어대니 내 가슴이 반쪽으로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아들이 연수 간  시간 동안 남편과 여행 등등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단 하나도 실행하지 못했고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날그날 뜨는 아들 현장 사진을 홈피에서 확인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마지막 한 달 아들이 적응을 했는지 사진 속 모습도 밝고 우리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이 삼일에 한 번씩으로 뜸해졌다. 그렇게  한 달은 순식간에 구름 흘러가 듯 지나갔다. 아들바라기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이 곧 도착할 날만을 손꼽으며 하릴없이 지냈다.

 소중한 아들이 두 달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엄청 큰 캐리어에 선물을 가득 담고서.

'꺅'

정말 잡동사니란 잡동사니는 다 들어있었다. 이상한 원시 가면. 스타벅스 1호점에서 산 텀블러, 각종 엽서, 옷,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파는 메이플 시럽을 500ml짜리 세 개나  넣어왔다. 아니  이 무거운 메이플시럽은 캐나다 대표 상품이라서 꼭 구매를 해야 한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어머나! 코스트코에서 다 파는데 ’ 아들의 따스한 마음을 알아채고 우리는 엄청 귀한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캐리어 깊숙한 곳에 있는 우리 부부를 위한 선물! 아들은 얼굴에 뿌듯한 기색을 보이며 슬그머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어머나... 세상에나...’


우리의 선물은 다름 아닌  술잔이었다.  맥주잔도 아니고 소주잔. 나는 소주를 마셔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아들의  홍조를 띤 얼굴을 바라봤다. 갑자기 나는 연기자가 되었다.

“어머, 어머! 아들 너무 고마워~~ 아니 어떻게 이런 선물을 살 생각을 했어?”

에라 모르겠다. 일단 좋아 기절할 것 같은 모션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부모님께 선물을 자주 하니까

" 히힛. 이 잔을 보자마자 딱 이건 아빠, 이건 엄마 거다 했지. 맘에 들어?"

 물론 나의 이런 리액션 덕분인지 지금 군대 간 아들은 평소에 작은 전시회를 가더라도 항상 나를 위한 기념품 하나라도 꼭 사가지고 들어온다.

"엄청 마음에 들지. 이건 엄마의 보물이야. 보물 1호. 영원히 간직할 거야"

과하게 목소리 텐션을 높이고 금세라도 울 것 같은 기쁨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들. 아빠가 소주잔 없는 거 어떻게 알고, 와~~~ 이 잔에 매일 소주 마셔야지"

남편은 정말 좋아하는 눈치였다. 나중에 물어봤는데 감동해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고 한다. 물론 그날 이후 남편은 소주를 마실 때면 항상 이 잔에 마신다. 그리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예쁘게 나의 잔 옆에 나란히 세워둔다.

“이건 우리 아들이 사준 건데”


 매번 소주를 마실 때면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흐뭇하게 바라본다. 물론 나는 소주를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잔을 한 번도 사용을 한 적은 없고 장식용으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싱크대 상부장을 열면 남편의 소주잔 옆 바로 그 자리. 맨 앞에 눈에 띄는 곳에 놓는다. 언제든지 아들이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 엄마와 떨어져 한 달 내내 징징거렸던 그 순간을 기억하길 바랐다.


 아들이 힘들고 울고 싶은  날이 온다면 언제나 자신을 믿고 지지했던 우리를 생각하고 마음 한 켠 따스하길 바라며 나는 그 소주잔을 예쁘게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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