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현장은 생각보다 끔찍하다.
ㅎ... 불태웠다.
오랬만에 <빅쇼트> 글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신발이 닳을 정도로 뛰어다녀 또 하나의 디자인 리뉴얼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입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이 모든 영광.." 아네, 닥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팀은 주택시장 하락이 오지 않아 파산위기에 처하자 상품을 판매한 재러드(라이언 고슬링)를 족치려 했지만, 오히려 욕만 먹습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로 가자”는 제안을 받죠. “거기 뭐가 있지?”라는 바움의 물음에 재러드는 “미국증권화포럼이 다음 주에 그곳에서 열린다.”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 난장판을 설계하고 미국 경제를 붕괴시킬 사람들이 모인다는 겁니다. 그들의 작태를 직접 본다면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래돼 기억이 희미하시겠지만 빅쇼트에 동참했던 풋내기 투자자 찰리와 재이미, 그리고 브래드 피트 닮은 벤 리커트 팀들도 라스베이거스를 향합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그룹이 서로 만나지는 않습니다만 그들이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도 비슷합니다. 바로 더 많은 자금을 하락 배팅, 즉 ‘빅 쇼트 X 빅 쇼트’해버린 것이죠. 모래성을 짓고 쓰나미 앞에서 파티를 벌이는 꼴을 보니 가관이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결정적인 3가지 장면을 통해 역겨운 당시 미국 금융산업을 고발합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부동산 종사자들을 모아놓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손실이 생긴다 해도 -5%에 그칠 거다’라는 발표자의 헛소리를 듣고 심기가 뒤틀린 마크 바움은 손을 번쩍 들고는 “그럴 가능성은 제로입니다!”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는 아내로부터 온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도중에 강당을 나가 버립니다. 실제로 이랬다고 하네요. 대단한 성질머리입니다.
한편 찰리와 제이미는 한 금융사 직원들로부터 실탄사격장으로 초대받습니다. 일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기관총으로 종잇장 테러리스트를 응징하며 총알 값은 법인카드로 처리하면 된다는 그들을 보며 두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어집니다. 열받은 찰리는 "저 멍청이들을 보아하니 스와프를 더 사야겠어"라고 합니다. 조심스러운 성격인 제이미는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일하는 형의 전 여자친구가 마침 라스베이거스에 있다며 한 번만 더 분위기를 파악해 보자고 합니다. 감독기관의 전문적인 의견을 한 번 더 듣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제이미가 그녀를 만난 곳은 회의실이 아니라 호텔 수영장입니다. 느긋하게 선텐을 즐기고 있는 그녀에게 모기지의 심각성에 대해 전문가로 의견을 묻자 시큰둥하게 말합니다. “모기지는 예산 삭감으로 조사할 여력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돈으로 이곳에 왔으며 “투자은행에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제이미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수영장 건너편에서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훈남. “골드만삭스 사람이야!”라며 환하게 웃으며 수영복 차림으로 달려가는 그녀. 오늘 그들은 썸을 탈까요? 뜨거운 밤을 보낼까요? 여러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아시나요?
이 말은 감독기관 직원이 감독을 받아야 하는
회사로 이직하겠다는 소립니다.
이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의 소지가 매우 큽니다. 그야말로 전관을 이용한 유착(癒着)의 고리가 되거든요. 금융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처에는 이런 전관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들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빅 쇼트>는 영리하게도 이 짧은 대화와 설정만으로 당시 미국 공직자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잘 보여줍니다. 국민의 세금을 받고 일하면서도 직무유기를 일삼으며 사리사욕만 챙기는 기관. 그런 자들에게 은밀한 유혹을 건네는 금융권의 유착을 복잡한 설명 없이 표현한 똑똑한 연출에 감탄하면서도 필자는 기부니가 나빴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특정 공기관 출신들이 사기업에 대거 재취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21년 9월 기사를 보면 무려 15명의 감독기관 퇴직자들이 감독대상 회사로 이직하였습니다. 재취업 센터도 아니고 왜 퇴직자들을 고용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감독기관에서의 수행했던 업무와 인맥과 노하우가 피감기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죠. 이 전관들의 영향력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막강합니다.
법률 관련 기관 출신은 대기업의 법무팀으로, 건설, 도로, 항만 관련된 기관 및 공기업 출신 역시 건설회사로 갑니다. 이들이 가서 무슨 일을 할지는 할많하않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공직자윤리법 제17조 및 제18조에서 기재부, 금융위원회, 금감원등의 4급 이상 공무원과 이에 준하는 직책을 수행한 자는 퇴직 후 5년간 취업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묘한 ‘취업심사제도’가 있어 ‘예외적으로 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 때문에 전관들의 재취업을 대부분 막지 못해 법 규정을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금감원 출신, 시중은행 ‘낙하산’여전 - 2008.02.19 KBS
‘유명무실’ 감독기관 재취업 제한.. 퇴직자 10 중 8명 금융권 갔다 - 2020.09.29 매일경제
2년 전 취업제한 방안 내놨지만…'00 전관' 취업길 막힌 건 단 한번 - 2023.08.08 연합뉴스
예시로 든 2008년부터 2023년까지 기사입니다. 바뀐 게 없습니다. 2017년부터 2020년 8월까지 금융감독원(48명), 금융위원회(12명), 공정거래위원회(13명) 출신의 재취업 심사대상자 73명 중 겨우 3명(금융위 2명, 공정위 1명)만 불승인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임원, 금융권, 대형 로펌으로 갔다고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금감원 출신 48명은 단 한 사람도 탈락자 없이 전원이 재취업했습니다.
취업심사제도는 특수한 경우를 인정하기 위한 제도인데 이를 이용해 대부분 제제를 피한 것입니다. 과연 80%나 되는 경우를 ‘예외적 취업’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누굴 위해 일할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금융혜택을 받아야 할 서민들의 금융복지나 피감기관을 엄격히 관리하는 금융정의를 위해서는 아닐 가능성을 언론도 우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계속..(할 수 있겠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