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미당 서정주 시 손글씨 대회
1972년 6월 어느 날 대방동에 있던 해군본부에서 꽤나 큰 행사가 열렸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호국보훈 행사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마침 대방동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전교생이 초대를 받았다. 당시 위로 누나 둘이 6학년과 4학년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소풍 가듯이 김밥도 싸고 해군의장대의 멋진 공연도 구경할 겸 온 가족이 출동했었다.
하얀 제복의 멋들어진 의장대 삼촌들의 총을 들고 하는 단체 제식 공연은 너무나 멋졌다. 그런데 워낙 군부대라는 것이 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6월의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면 행사를 즐겨야 하는 것이 고역이라면 고역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게다가 우리는 사생대회를 치러야 했다.
옆에서 엄마랑 일찌감치 그리는 것 따위는 포기해 버린 누이들은 맛있는 김밥을 먹으며 히히 호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의장대 공연 장면을 크레파스로 꾸역꾸역 메꾸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돗자리 하나 펴고 이젤도 책상도 없이 머리를 묻고 엎드려서 그림을 완성해 갔다. 크레파스도 지쳤는지 녹아내릴 것 같았다.
하여튼 간신히 완성을 하고, 그래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성했다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아 기분은 좋게 그날을 마무리했다. 사실 그림을 완성한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할 동기도 없다.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학교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신다. 해군본부 사생대회에서 입선을 했다고 상을 주셨다. 물론 나 말고 더 몇 명이 더 받았다. 심지어 장려상도 우리 반에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난 입선과 장려상이 어떤 상인지 알지 못했고, 마냥 뿌듯해했다. 아니 그냥 뿌듯한 정도가 아니라 내 인생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해도 좋을 거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나 스스로 각성한 날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겨우 입선 하나로 나는 완전히 달라지기로 했다. 왜냐면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 되었으니까. 앞으로 미술 시간은 마냥 즐겁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 뒤로 내내 미술 시간이 즐거웠다. 교내 백일장에서 종종 상을 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갔지만, 전학 간 언주 초등학교에서도 미술시간을 즐거웠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방과 후 활동을 지도해 주신 미술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중학교에서도 미술반 활동은 이어졌다. 선생님이 예뻐서 핑크빛 마음으로 찾아 들어간 동양화 반에서는 먹색만 보다가 끝났고, 중3 때는 나랑 이름이 같은 미술선생님을 만나 내 이름과 미술 소질을 연결시키면서 또 뿌듯해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제나 저제나 미술반 모집한다는 소식을 기다리다가 고1 여름방학 하는 날 미술반을 모집한다고 해서 미술실로 달려갔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왔다고 미술부장을 시켜주셨다. 결국 나는 미술 대학에 입학하였고, 내내 디자이너로, 또 디자인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 그날의 입선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정말 그 고작 입선 때문에?라고 생각이 들 때면 옷에 묻은 먼지 털어내 듯 툭 털어 내어도 보았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시작이라는 점은 달리 고쳐 잡을 생각도 딱히 없다.
그러다 지난여름 집사람이 작도반(작가도전반을 그렇게 부른다)에서 받아 왔다면서 “미당 서정주 시 손글씨 공모전”에 응모해 보라며 용지를 불쑥 내민다. 늦둥이 아들 녀석과 시도 고르며 서로서로 재미나게 손글씨를 쓰며 오후 한나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야 집사람에서 일괄 응모했다고 들었다.
오늘 입선 상장이 우체국 등기우편으로 배달되어 왔다. 이미 이삼주 전에 집사람이 카톡으로 “여보꺼 입선!!!”이라고 느낌표를 세 개나 찍어서 보냈었다. 그리고 한주쯤 후에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입선에 당선되었다고 축하한다고 하면서 상장을 보내준다고 집주소를 확인했다.
그렇게 오늘 또 내 손에 입선 상장이 날아들었다. 나의 첫 입선으로부터 자그마치 53년이 지나서 받아 든 또 하나의 입선이다. 왠지 설렌다. 이 녀석은 나를 또 어떤 길로 안내할까? 새로운 길이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내내 즐겁고 따뜻한 길이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