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_07. 삶을 설계하는 디자인

매일의 삶에 길을 내다

by 토니샘


UX 디자인은 더 이상 ‘기능을 쉽게 쓰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의 방식과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인도 듀얼 SIM 사례는 기술의 표준보다 사용자의 삶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디자인의 미래는 ‘Easy to Use’를 넘어 ‘Easy to Live’이며, 이는 삶 전체를 향한 비전의 문제이다.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스마트폰 UX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화려한 기능과 새로운 제스처였다. 언론은 “혁신적인 인터랙션”이라는 말에 흥분했고, 기술은 매달 새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다. 진짜 중요한 것은 ‘효과’가 아니라 ‘한결같음’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폰을 켤 때, “오늘도 어제처럼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 이 단순해 보이는 신뢰가 사용자 경험의 본질이라는 것을 숱한 실패와 수정, 그리고 끊임없는 사용자 관찰 끝에 깨달았다.


갤럭시 S가 성공하고 S2, S3로 이어질 무렵, 우리 팀은 ‘글로벌 표준’을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안드로이드 순정 UX는 버전이 바뀔 때마다 설정 구조나 기본 흐름이 뒤흔들리던 시기였다. 삼성만의 일관되고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은 UX를 TouchWiz(후일의 One UI)로 구축하고 싶었다.


그래서 각 지역의 VOC를 수집하며 글로벌 표준을 세우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유독 한 지역이 걸렸다. 바로 인도였다.


인도로 가시오

정확한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인도 북부의 산업 허브, 노이다로 향했다. 거기에는 삼성디자인델리(SDD)가 있었다. 파견된 주재원을 통해 인도에서는 소소하지만 글로벌 표준과는 거리가 있는 요구를 해오고 있던 터였다.


당시 인도 스마트폰 시장의 중심은 플래그십이 아닌 중저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모든 모델이 듀얼 SIM이었다. 단순 취향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 그렇게 되도록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우리가 상정하던 “글로벌 사용자”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통신사마다 매달 달라지는 데이터·음성 프로모션, 도시와 고향의 통신 커버리지 격차, 개인용 번호와 업무용 번호를 분리하는 생활문화, 이 모든 요소가 “두 개의 SIM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듀얼 SIM을 설정하는 경험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것이었다. 메뉴는 깊고 구조는 복잡했고, 활성 SIM이 무엇인지조차 바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인도에서는 ‘매일 하는 일’이었고 그들의 생활비와 통화 품질을 결정하는 문제였다.


사소해 보이는 ‘설정 방법’이 그들의 ‘삶의 과정’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기능이 아니라, 그들의 하루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퀵패널에 SIM 전환 단축 경로 제공하고, 전화의 다이얼 화면에서 SIM 선택 버튼을 시각적으로 눈에 띄게 부각시키고, SIM별 알림, 수신 전화, 메시지 화면에 같은 색상을 적용하는 등등의 조치들을 실행했다.


글로벌 표준과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지만, 우리는 인도 시장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때 배운 교훈은 단순했다.


“UX는 기술의 표준이 아니라 그 기술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


글로벌 전략과 로컬의 삶 사이에서 우리가 반드시 세워야 할 균형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UX 디자인은 결국 사용자의 삶의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Ultimately, UX design is about shaping the processes of people’s everyday lives.)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삼성에서 SADI로 터전을 옮긴 다음, 그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디자인의 미래는 ‘Easy to Live’에 있다.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스며들고, 드러나는 것은 사람의 경험뿐이다. 이제 디자인은 “어떻게 쉽게 쓰는가”를 넘어 “어떻게 살아가게 만드는가”를 중심으로 진화한다.


나는 넷플릭스를 볼 때마다 이 변화를 느낀다. 그들은 “영화를 더 편하게 보기 위한 앱”을 만든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금요일 밤의 의미 자체를 새로 정의했다.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미처 몰랐던 취향을 알려주었고, ‘정주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는 콘텐츠 소비 방식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배달의 민족도 마찬가지다. 배민은 “주문하기 쉬운 앱”을 만든 게 아니다.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을 다시 썼다. 혼밥의 문화, 외식의 감각, 시간의 사용 방식까지 바꾸었다.


Airbnb는 단순한 숙소 예약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Airbnb는 숙소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탐험하는 새로운 여정을 만들었다.


이것이 ‘Easy to Live’다. 기능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재설계한다.


그리고 이건 선택이 아니다. 기술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올수록, 디자이너는 더 이상 화면만 설계하지 않는다. 삶 자체를 설계하게 된다.


삶을 설계한다는 것

인공지능에서 스마트 홈, XR 공간컴퓨팅과 메타버스까지.

새로운 기술은 모두 경험의 범위를 ‘기기’에서 ‘삶 전체’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화면도, 더 많은 기능도, 더 높은 효율도 아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이다.


나는 로트링 펜을 들고 형태를 고민하던 30여 년 전의 나, 웹사이트를 만들며 정보를 구축하던 20여 년 전의 나, 스마트폰 UX를 설계하며 경험을 최적화하던 10여 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디자인은 기술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만드는 일이라고.


‘Easy to Use’는 출발점이었다. ‘Easy to Live’는 우리가 향해야 할 목적지다.


우리는 더 이상 사용자에게 “이 기능을 쓰기 쉬운 가요?”라고 묻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이 경험이 당신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었나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서, 가능성 디자인이 시작된다.



다음 이야기:

다음 이야기 EP_08. 「AI 시대, 디자인이 기업에게 던지는 질문」에서는

AI가 “모든 답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우라는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