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바꾸면 세계가 바뀐다
모든 질문에 답이 존재하는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질문이 사라진 세계다.
질문 하나를 바꿨더니 더 적게 만들었는데 더 많이 읽혔다.
AI가 선택지를 만들 때, 인간은 '왜'를 묻는다.
AI는 우리에게 놀라운 속도로 답을 내놓는다. 데이터는 인간보다 먼저 생각하고, 알고리즘은 인간보다 정밀하게 판단한다. 우리는 어느새 "모른다"는 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답이 존재하는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질문이 사라진 세계다.
최근 한 스타트업 CEO와의 미팅에서 나는 이 현상을 목격했다. 그는 태블릿 화면에 AI가 분석한 세 가지 사업 방향을 펼쳐 보이며 물었다. "이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각 방향마다 예상 수익률, 시장 점유율, 성장 곡선이 정교한 그래프로 제시되어 있었다. 데이터는 충실했고, 분석은 치밀했다.
나는 되물었다. "왜 이 사업을 하려고 하십니까?"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CEO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태블릿을 가리켰다. "여기 예상 수익률이 23%이고, 시장 규모도..."
"아니요." 내가 끊었다. "수익률이 아니라 이유를 묻는 겁니다. 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다시 멈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데이터가 여기를 가리키고 있으니까..."
30분 동안 우리는 '어떻게'를 논했지만, 단 한 번도 '왜'를 묻지 않았던 것이다.
기업의 회의실에서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도, 더 이상 "왜?"라는 물음은 쉽게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이?"라는 질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효율을 가져간 그 자리에서, 기업가에게 남은 단 하나의 무기는 '질문'이다.
작년부터 경기도청 도정소식지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는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담당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도민이 도정 소식을 읽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구독자 만족도, 보급률 같은 정량적 지표가 회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예산을 늘려 배포 부수를 확대하고, 더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고, 홍보 채널을 다각화하자는 의견들이 오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보급률은 계속 올라가는데, 정작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었다. 소식지는 많이 나가지만, 아파트 우편함에서 곧장 재활용 수거함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질문을 바꾸도록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도민이 도정 소식을 읽게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도민은 왜 이 소식지를 읽어야 할까?"로.
처음엔 당연한 질문처럼 들렸다. "도정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다시 물었다. "도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요?" 회의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도민은 '도청의 도정 홍보 소식'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원합니다."
질문이 바뀌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의 본질이 바뀌었다. 도정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콘텐츠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도민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제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정 소식이 전달되는 구조로. 독자는 '도청이 전하는 소식'이 아니라 '내 삶에 필요한 읽을거리'를 만났다.
올해 초 이 방향이 반영되었고, 가을 정기 위원회에서는 예상치 못한 보고를 받았다. 예산 감축으로 발행 부수가 30% 줄었는데, 정기 구독자는 오히려 15% 증가했다는 것이다. 더 적게 만들었는데, 더 많이 읽힌 것이다.
질문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AI의 등장은 기업 경영의 근본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데이터는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였고, 알고리즘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한 분석과 자동화가 가능한 시대에, 기업의 차별성은 '답을 얼마나 잘 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묻는가'에서 결정되고 있다.
AI는 답하는 도구다. 그것은 틀림없이 유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쌓아도, 그것은 기업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 시대의 기업가는 이제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수익 모델이나 시장 점유율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다.
디자인은 바로 그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다. 디자인은 언제나 답보다 질문에서 출발했다. 보이지 않는 문제를 찾아내고, 불편의 이면에 있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는 일. 그것이 디자이너의 일이었고, 이제는 모든 기업가의 일이다.
나는 이를 '디자인적 질문력'이라고 부른다. 디자인적 질문력이란 ‘문제를 더 잘 정의하기 위해 질문을 다시 설계하는 능력’이다. 이미 존재하는 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찾아 문제의 본질을 재구성하는 힘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하다. 경기도청 회의실에서 내가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더 많이 읽게 할까?"를 "왜 도민이 이걸 읽어야 할까?"로 바꾸는 것. 스타트업 회의실에서 내가 했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방향을 선택할까?"를 "왜 이 사업을 하려 하는가?"로 되묻는 것.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질문의 학문이다. 그것은 기존의 답을 검증하기보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구성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AI가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시대"일수록, 기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질문하는 능력이다.
AI가 완벽한 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것은 기술이 아닌 태도의 문제이며, 계산이 아닌 통찰의 문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확인했다. 디자인이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무한한 선택지를 펼쳐놓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가? 수백 가지 답 중에서 우리의 삶을 향한 답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본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졸업작품 제작 과정에서 목격한 AI 시대 창조의 실체를.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인간이 해야 할 진짜 일을.
AI가 선택지를 만들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