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에서 Doing으로

판단의 출발점을 바꾸는 일

by 토니샘

앞선 글에서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행위를 통해서만 존재는 입증된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으로 살고 있을까.

생각보다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나 떠올려 보자.

그 일이 어떻게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면

잠시 멈춰보자.


“내 경험상 이렇게 하는 게 맞다.”
“이 분야는 내가 전문가다. 조직은 내 판단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판단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들려도

출발점이 ‘나’라면

그것은 존재 중심의 사고에 가깝다.


반대로 이런 생각은 어떨까.

“이 상황에서 당사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무엇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어떻게 보일까.”


판단의 출발점이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면,

당신은 행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한다.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하나는 내가 가진 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다른 하나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준으로

나를 다시 정비한다.


디자인으로 말하면 이렇다.


“내가 이렇게 디자인했으니 사용자가 익혀야 한다.”
혹은, “사용자가 이렇게 움직이니 내가 맞춰야 한다.”


어느 쪽이 진짜 디자이너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일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운전할 때를 떠올려보자.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당신은 어떤가?


“감히 내 앞을?”


이 반응은 빠르다.

감정은 언제나 먼저 달린다.


하지만 그다음 질문이 달라질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무슨 상황이 있었을까.”


행위 중심의 삶은

바로 이 ‘한 번 더 묻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행위로 산다는 것은 훈련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중심에 둔다.


그래서

판단의 기준을 바깥으로 옮기는 일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바탕에는

세 가지 존중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자신에 대한 존중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그래야 주변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을 지킬 수 있다.


둘째, 타인에 대한 존중

누구나 나름의 이유와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인정.

물론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의 이익이 부딪히는 자리에서

타협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찾으려는 과정,

그 가능성을 믿는 태도다.


셋째, 상황에 대한 존중

이미 벌어진 일을 탓하기보다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찾는 자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났다면,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하나의 메타인식이 필요하다.


나는 존재로 주장되기보다

행위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인식.


존재는 주어지는 것이지만,

행위는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자리에서

어제와 조금 다른 선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존재로 말하기보다

행위로 말하는 하루가 되기를.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