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기로 남은 말들

by too

얼마 전, 친구들과 모처럼의 모임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지만, 대화는 묘하게 불편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 친구가 어떤 유명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은 평일엔 한국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외국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저 그런가 보다 싶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쉬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특별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머, 그 사람 돈 진짜 많이 벌었나 보네.”

그 말투에는 은근한 비꼬음이 섞여 있었다.


그 틈을 타 또 다른 친구가 덧붙였다.

“한국에서 돈 벌었으면 한국에서 써야지.”


이 말을 한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올여름에만 벌써 해외를 세 번이나 다녀왔다.


“누구는 돈이 없어서 못 하지. 어떻게 그렇게 자기만을 위해 돈을 써?”

“그러니까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지...”


그 친구는 문득 말을 멈췄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나를 의식한 듯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굳이 의견을 말해야 할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 시선은 마치 ‘너도 그 사람이랑 같은 부류냐’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웃고 넘겼을 것이다. 어렸을 땐 친구들이 만든 ‘타깃’ 부류에 들지 않기 위해 내 생각을 종종 감추곤 했다. 그게 더 안전했고, 그냥 그렇게 지내면 덜 복잡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고 나면 마음에 체기처럼 남았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답답함. 뿌연 연기 속에 갇힌 듯한 감각.

그 감각은 분명히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고, 멈춰야 한다고.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

그날,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들 사는 방식은 다르니까.”


친구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친구들의 시선과 분위기에 눌려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작 친구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큰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친구들 안에 끼어들기 위해 애쓰며 스스로를 조용히 만들어왔던 건 아닐까.


그렇게 눌러둔 감정은 결국 말이 되지 못한 채 내 안에 쌓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소리로, 어떤 때는 기분이나 증상으로.

내가 말한 ‘체기’도 그런 신호 중 하나다.

무언가 멈춰야 한다는 경고, 내 안의 빨간불이 켜졌다는 알림.


이런 신호를 무시한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외면하다 보면, 언젠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장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신호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느끼고, 인정하고,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남들이 뭐라 하느냐가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그 신호에 따라 사는 삶.

그게,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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