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틀이 된다
어제 시아버지가 스치듯 이야기를 꺼내셨다.
"한 20년쯤 전 일이야..."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에는 딸, 그러니까 내 시누이가 등장했다.
그때 시누이는 미국 유학 중이었고, 집안 사정은 넉넉지 않았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시누이는 고단한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여덟 살 어린 사촌과 함께 쇼핑을 나섰다.
시누이는 평소 갖고 싶었던 유명 브랜드의 시계를 바라보다가 사촌에게 물었다,
"이거 어때, 나한테 어울릴까?"
사촌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같이 고르자고 한 걸 보니 나한테도 하나 사주려나?' 기대가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완전 잘 어울릴 것 같아, "
"그래? 그럼 이걸로 살래."
시누이는 시계를 골라 계산했다.
사촌은 자신에게도 같은 선물이 돌아오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표정은 금세 굳었다.
그 눈치를 챘는지, 시누이가 말했다.
'너도 하나 골라봐."
하지만 시누이가 데려간 가게는, 자신이 산 브랜드보다 훨씬 덜 유명하고 저렴한 시계를 파는 곳이었다.
사촌의 기대는 한참 못 미쳤고, 실망감은 얼굴 곳곳에 드러났다.
그날 시누이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마음을 아버지에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같은 시계를 사서 줬어야 했던 거야?"
그 질문에, 시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단다.
그런데 그 조용했던 아버지가, 어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셨다.
사촌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고, 마치 그 장면을 오래 기다린 증거처럼 꺼내 놓으셨다.
"그때도 그 애는 좀... 그랬어."
사촌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아니 아마 그전부터.
그날의 일이 아버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고,
세월이 지나 다시 꺼내셨을 때도 그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때로,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로 누군가를 마음속에 정리해버리곤 한다.
어쩌면 사람을 판단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