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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석 Mar 02. 2020

신년음악회 유감

2020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신년음악회

2020 신년음악회 / 문화체육관광부


2020년 1월 8일(수) 19:00~21: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층 D블럭 4열 3번 / 일반석 10,000원


이영조 / 여명

루드비히 판 베토벤 / 3중 협주곡 C장조 op.56

     - 조진주(Vn), 양성원(Vc) , 임동혁(Pf)

인터미션

김종천, 최철호(arr. 박정규) / 비익련리

     - 꽃별(해금), 이명훈(대금)

요한 슈트라우스 II / 봄의 소리 op.410

     - 조수미(S)

프란츠 레하르 / (미소의 나라) 그대는 나의 모든 것

     - 김우경(T)

신귀복 / 얼굴

     - 김우경(T)

스코틀랜드 민요(arr. 김애라) / The Water is Wide

     - 조수미(S), 박용명(T), 나리(해금), 김태환(Gt)

레너드 번스타인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Tonight

     - 조수미(S), 김우경(T)

오병희 / (동방의 빛) 제3부 판 중 3번 희(希)

     - 국립합창단, 황영남(모듬북), 양제인, 안소명

(앵콜) 김바로 / 오 대한민국

     - 조수미(S), 국립합창단

(앵콜) 요한 슈트라우스 I / 라데츠키 행진곡 op.228


정치용(Cond), KBS교향악단


매년 예술의전당에서 주관하는 신년음악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거라 우리나라 정부의 공식적인 신년음악회라고 할 수 있다. 매년 정부 초청인사 몫을 제외하고는 일반에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하는데 가성비가 워낙 좋아 오픈하고는 곧 매진이 된다. 올해는 1인 1장으로 예매가 제한되었음에도 역시 오픈하는 날 바로 매진이 되었다. 공연 전날 인터파크에서 신분증이 없으면 입장이 어렵고 양도한 경우 입장이 안된다는 문자를 받고는 대통령이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테오도르 쿠렌치스(Cond)가 이끄는 무지카 에테르나의 공연을 예매하랴, 우리집 강아지 병원 데려가랴, 아내와 아들이 일이 있는 장소까지 데려다 주랴 바빴지만 그래도 모두 무난하게 시간에 맞춰 처리했다. 일찍 츨발해서 서예전시관에서 하는 <조선·근대 서화전>을 보려고 했으나 슬개골 탈구 증세로 아픈 강아지를 아무도 없는 집안에 혼자 놔두고 나오기가 안 됐어서 안고 있다 보니 생각보다 좀 늦게 나왔다.


예술의전당에 도착하니 17:30, 티켓박스가 오픈된 시간이라 티켓 먼저 찾으려고 했는데, 비타민스테이션에서 음악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폐쇄되어 있고 대신 서예박물관 방향으로 돌아가서 입장하라고 한다. 돌아갔더니 물품보관소 앞의 출입구만 개방되어 그리로만 출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로비에는 여기저기 통제선을 만들어 놓고 출입을 제한하고 들어가는 데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마침 입구에서 지원을 나온 채수안 매니저를 만났더니 내가 선 줄은 초대 관객들이 서는 곳이고 매표 관객은 바로 티켓박스에서 표를 찾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어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대통령의 방문으로 인해 예술의전당 전직원이 총 출동하여 여기저기에 배치된 것 같았다. 식사를 하기에는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시간이었으나 만약 밖에서 식사를 하고 뒤늦게 들어오다 로비에 설치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느라 길게 줄을 서면 공연 시간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지하 심포니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보안검색대는 8대 정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걸 운영하느라 많은 인원과 장비가 동원되었고 관객들은 관객들 나름대로 상당히 불편하고 혼잡스러웠다.


아는 분들과 심포니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 뒤에 엘리베이터로 3층에 올라갈 요량으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고 기다렸는데 엘리베이터가 열려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거기에 문희상 국회의장 부부와 안내자로 예술의전당 박민정 문화예술본부장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내리지 않고 그대로 있기에 아무래도 엘리베이터가 잘못 온 것 같아 우리 일행은 타지 않고 그대로 올려보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국회의장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일반 시민들에게 같이 타고 올라가자고 이야기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럴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오기를 기다려 올라갔다. 이날 일반에게 판매한 티켓은 3층 전체와 1층의 맨앞 3열 정도까지, 그리고 A블럭과 E블럭 일부였다. 나는 음향 때문에 처음부터 3층 좌석을 겨냥하고 예매해서 비교적 좋은 자리를 점했는데, 막상 자리에 가보니 아뿔사,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는 연주가 끝나고 심하게 격한 환호와 함께 커다란 박수를 치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 바로 내 열 2번 좌석에 앉아 있었다. 순간 이날 연주를 잘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잠시 뒤 1번 좌석 주인인 젊은 여성 관객이 와서 자리를 잡으니 내 옆 좌석 관객이 1번 좌석 주인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고, 이 분이 시각장애인인 것을 본 그 젊은 여성 관객은 순순히 자리를 바꿔주어서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먼저 이날 사회를 맡은 김소현 뮤지컬 가수와 김광민 피아니스트가 나와 이날 연주에 대한 안내와 곡 소개를 했는데, 내가 딱 싫어하는 스타일의 음악회였다. 이들은 중간중간 나와서 쓸데없는 잡담과 함께 일부 곡 소개도 했는데, 비교적 똑떨어진 발음으로 또박또박 진행한 김소현과 달리 김광민은 어눌한 데다 불필요한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해서 살짝 짜증이 났다. 첫 곡은 이영조의 <여명>이라는 작품으로 여린 현의 트레몰로가 마치 서서히 세상이 밝아오는 느낌을 표현해 주었고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튀어나오는 트럼본 소리가 이채로웠다. 두 번째 작품은 조진주(Vn)와 양성원(Vc), 임동혁(Pf)이라는 예상치 못한 트리오가 연주한 베토벤 <삼중 협주곡>이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난 앙상블로 아주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연주였다. 양성원(Vc)이 리드를 하면서 탄탄하게 저음부를 받쳐주는 가운데, 임동혁(Pf)이 화음을 연주하고 그 위로 조진주(Vn)의 바이올린이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1악장이 끝나고 악장 간 박수가 꽤 크게 터져나왔는데, 아마 초대 관객 가운데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던 탓이리라. 내 옆의 그 문제의 관객은 음악회를 많이 다녀서인지 악장 간 박수는 치지 않았으나 연주 도중 기침을 자주 했는데,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한다거나 기침사탕을 준비하거나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모습은 없었고, 역시 음악이 끝나니까 예의 그 괴성과 함께 몸을 흔들어 가면서 과하다 싶은 박수를 쳤다.


인터미션 때에는 요즘 자주 뵙는 사자개님을 만나서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 포스팅을 읽고 국악원 식당 담소원엘 갔더니 좋았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인터미션이 끝날 때쯤 객석에 들어왔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작을 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지하의 케이터링에서 귀빈들이 다과를 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옆자리의 여성 관객은 2부가 시작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옆엣 분의 소리를 견딜 수 없어서 그냥 귀가를 한 것인지 아니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처럼 이 분을 여러 번 본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 접한 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러울 것 같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2부 첫 곡은 국악관현악곡으로 작곡된 것을 양악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한 <비익연리>라는 작품이었다. 비익조와 연리지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하는데, 이 두 단어 모두 부부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말이지만 이날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화합하며 살자는 의미로 선정한 곡이라고 한다. 말로만 듣던 꽃별을 이날 처음으로 무대에서 보았다. 마이크가 내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해금과 대금의 소리가 양악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묻히지 않고 들린 것으로 보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조수미(S)와 김우경(T)이 번갈아 나오면서 각각 두 곡씩의 독창곡과 한 곡의 듀엣곡을 불러 주었다. 조수미(S)는 감기가 걸렸다면서 마이크를 사용해서 좀 실망스러웠다. <봄의 소리>에서는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음색을 들을 수 있었으나 예전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고, 최신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는 스코틀랜드 민요는 애절한 느낌을 잘 살려주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우경(T)과 함께 한 듀엣도 하고 많은 작품 중에 꼭 뮤지컬 곡을 불렀어야 했나 싶다. 어쨌거나 지금가지 내가 본 조수미의 무대 가운데 가장 실망스런 무대였다. 하지만 세 번이나 옷을 갈아입은 그녀의 패션 감각은 여전했다. 김우경(T)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그 특유의 미성을 잘 들려주어서 좋았으나 첫 곡인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의 마지막 부분에서 살짝 삑사리가 난 것 빼고는 모두 좋았다. 신귀복의 <얼굴>에서는 2절의 '~구름 속의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 날~'에서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날으던'을 '날던'으로 바꿔 부른 것이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다.


정규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은 오병희의 <동방의 빛> 가운데 마지막 곡이었는데 어린이 듀엣 독창에 합창과 관현악이 어우러진 대규모 칸타타였다. 아리랑 선율로 시작해서 점점 고조되는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두 어린이의 목소리가 맑고 깨끗했는데 두 어린이 모두 상당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연주시간이 짧았던 느낌이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앵콜로 조수미가 국립합창단원 10명과 함께 별 감흥이 없는, 소위 국뽕이 충만한 곡을 하나 불러 주었고, 이어 신년의 느낌이 나도록 요한 슈트라우스 I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는 연주회가 막을 내렸다. 대통령 내외가 무대에 올라 연주자들과 악수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는데 연주자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행사였을 듯. 모든 일정이 끝나고 대통령이 퇴장하고 일반 관객들도 나가려는데 경호 문제로 객석의 출입구는 닫혀 있어서 관객들은 잠시 객석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1층 로비로 나갔더니 아는 얼굴들이 많아 이야기를 하다가 로비에 조진주(Vn)나 나와 있다고 해서 나도 가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그리고 다시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순간, 베레모를 쓰고 길다란 천에 싸여 있는 물건을 끌고 가는 군인들이 보였는데, 날라리님의 말에 의하면 저격수들이라고. 대통령이 음악회장에 오니 별의 별 것을 다 구경한다. 로비에서 나와 비타민스테이션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공연 중 꺼 놓았던 전화기를 켜는 순간, 3년 동안 취준생으로 있던 딸이 원하던 직종의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이 됐다는 문자가 와 있어서 귀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비타민스테이션에서는 요즘 자주 보는 서형민 피아니스트와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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