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집의 기준

#17. 이제야 깨달은 나의 입지론

by 목양부인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리멸렬한 호불호 속에

이사 갈 동네를 끝내 정하지도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랜선 임장이나 했었는데...


지도 위에 검색할 키워드를 입력하여

목적지를 정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내가 어떤 동네를 원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어떤 점이 꺼려지는지.


지금의 집이, 새로 이사 온 동네와 지역이

나의 취향과 가치관을 뾰족하게 다듬어줬다.

집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을 더 넓혀주었다.


우리 집이 좋긴 좋은데 무엇 때문에 좋은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되짚어보게 되면서.



엄마, 나 아파트랑 잘 맞았네.






새집으로 입주한 후 나는 요즘 지도 앱에서

맛집 위치를 보며 마실을 쏘다니는 중이다.


나름 경건하게 임하고 있는 골목길 산책을

새 동네 적응과 주변 단지 임장이라 쓰고

빵집 투어라 읽는다.



여기는 빵-쿠키-케익-브런치-디저트의 성지인가






빵순이가 빵 찾아 빵 먹으러 다녔나 싶겠지만

빵을 뜯어먹으며 나는 내가 어떤 지역에

살고 싶어 하는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간판에 프랜차이즈 로고 하나 달지 않고

골목 곳곳에서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맛집은

내가 이 동네를 더욱 사랑하게 된 계기이자

산책 중 하나씩 알아가고픈 작은 보물이다.

젊은 사장님들의 인스타 감성 가게 구경

내겐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요소이기에.


나는 새집에 입주한 것뿐만 아니라

새 동네, 새 상권, 새 산책길까지 죄다 좋다.


내가 자주 다닐만한 카페, 편의점, 빵집,

마트, 놀이터, 공원, 식당, 도서관, 병원이

도보거리권에 있고 지하철도 아주 가깝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왕복 10차선 대로변

초대형 신시가지 대장격 아파트가 있지만

각종 병원들과 브랜드 식당과 스타벅스,

멀티플렉스까지 끼고 있는 상권보다는

소박한 2차선 도로 위에 상가를 끼고 있는

500세대 이하 소규모 단지가 겹다.


자주 가지도 않을 백화점이나 웨딩홀이

집 근처에 있어봤자 행복을 주진 않으므로.


세대수가 깡패라는 대단지 입지보다

중소형 단지가 나와 더 잘 맞는 것 같다.

호감과 인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의 취향과 조건도 무시할 수 없을 터.


2차선 도로를 연상케 하는 근린공원 산책길








부동산 일자무식이던 내가

아파트 이름조차 잘 구분 못하던 내가

빌라도 괜찮다며 전세에 안주하던 내가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면서 점차 관심을 갖고

각종 청약에 적극 도전하고 서류를 내며

수없이 많은 탈락과 예비당첨 기회를 지나

행복주택 신축 아파트까지 들어왔다.


자격시험 공부 스트레스와 합격 압박,

전세 계약 만기 후 집주인과의 다툼,

한파 속 보일러 고장과 찬물 샤워,

한밤 중 형광등이 뚝 떨어졌던 일,

경매 참여 최저 입찰금 수표 발행,

LH장기임대주택 공가세대 관람,

31회 공인중개사 합격과 실무교육,

그리고 부동산 전자계약 서명까지.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경험했구나.


아직 무주택자 신분을 벗어난 건 아니지만

이젠 내 집 없는 것이 전처럼 두렵지 않다.

임대주택 입주에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입지를 선호하고 즐거워하며

다음번 집을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방향과 설계가 대충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 넓은 땅에 집이 없다는 현실보다도

그래서 집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 어떻게 들어갈지

대안을 못 찾는 게 더 두려웠던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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